[사설]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물거품 되나
[사설]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물거품 되나
  • 신아일보
  • 승인 2016.05.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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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규명·피해자 보상·재발 방지책 등
조속히 이뤄지도록 국회가 최선 다해야

사망자만 239명에 이른 전대미문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특별법이 끝내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11일 오후 3시 가습기살균제 현안보고가 진행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선 야당 의원들과 윤성규 환경부 장관 간에 설전만 오갔지 정부의 사과도 없었고, 피해구제 특별법도 마련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대책이 이날 환노위에서 마련되기를 기대했으나 아무런 성과도 없이 산회하자 분통을 터트렸다.

결국 계류 중인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 법안 4건도 이달 말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앞서 지난 8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한 당정협의에서 국회가 진상조사에 착수하고 청문회도 하겠다고 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비상한 각오로 사태 수습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장관은 11일 환노위에서 “당시 법제가 미비했던 부분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환경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은 셈이다.

아무리 19대 국회가 ‘식물국회’라지만 유종의 미라도 거둬야 하는 게 아닌가.

며칠만 참으면 19대 국회가 끝난다는 생각에서 유야무야 넘기려는 정부의 태도는 참으로 한심하다. 그동안의 대책 운운은 ‘립서비스’였단 말인가.

정부와 여당의 무대책을 지켜본 국민들은 허탈한 가슴만 쓸어내려야 했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이 “부끄럽다”고 했겠는가.

더민주 소속 김영주 환노위원장은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결국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12일 가습기 살균제 문제와 관련, “정부당국의 뼈아픈 반성과 함께 대국민사과를 요구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대한 입장표명과 함께 관계자에 대한 문책 인사가 이뤄질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사실 2012년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와 폐손상의 인과관계를 공식 확인한 후의 과정을 보면 피해를 줄일 만한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통제하지 않았다. 그러자 기업들은 버젓이 제품을 팔았고 사건 이후 은폐로 일관했다. 업계·정부·정치권 간의 3각 커넥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검찰이 3년이 넘도록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던 것이나, 2013년 발의된 가습기 살균제 관련 특별법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이런 커넥션이 떠오른다.

옥시는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정부가 지정한 사용금지 물질로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흡입 독성실험’을 생략하고 PHMG를 함유한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을 시장에 내놓아도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용기엔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광고 문구까지 있어도 그냥 통과됐었다.

게다가 옥시에 이어 사망자 14명을 포함해 28명의 피해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세퓨’도 2가지 독성 화학물질을 임의대로 섞어 조잡하게 제조된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추가로 확인됐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정부인지를 묻고 싶다.

정부가 이처럼 ‘살인제품’을 방치하고 무사안일로 일관하다보니, ‘가습기 살균제 참사 항의방문단’에 따르면 영국 옥시 본사 라케시 카푸어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한국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한국인을 바보로 취급했다고 한다.

새누리당은 당초 약속대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와 함께 청문회를 추진해야 한다.

더민주와 국민의당도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피해자 보상, 재발 방지책 등이 조속히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지켜보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차원에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