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규 칼럼] '반기문 대망론’ vs ‘홍석현 대망론’
[조한규 칼럼] '반기문 대망론’ vs ‘홍석현 대망론’
  • 신아일보
  • 승인 2016.05.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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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 무죄네트워크 공동대표·전 세계일보 사장

 
반기문(潘基文)과 홍석현(洪錫炫). 묘(妙)한 관계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반기문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은 외교통상부장관(2004.1-2006.11)이었고, 홍석현 중앙일보 JTBC 회장은 주미대사(2005.2-2005.9)였다.

당시 두 사람은 북핵문제 등을 놓고 여러 차례 공식적인 회의를 가졌다. 그래서 상대를 서로 잘 안다. 반 총장이 1944년생이어서 1949년생인 홍 회장보다 다섯 살 위다. 

원래 유엔 사무총장 자리는 홍 회장의 몫이었다. 홍 회장은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대사직과 함께 차기 UN 사무총장 후보 내정의 약속을 받고 2005년 2월 워싱턴에 부임했다.

2005년 7월 MBC가 ‘삼성X파일’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홍 회장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운명은 참으로 알 수 없다. 한 순간 엇갈린다. 홍 회장 대신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통일’ 주도권을 잡기 위해 두 사람은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먼저 반 총장의 ‘통일카드’는 북한 방문이다. 지난해 11월 반 총장의 방북설이 흘러 나왔다.

그는 지난해 연말 기자들과 만나 “최근에 (북한으로부터) 약간 긍정적인 신호가 왔다”며 “이른 시일 내에 방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북한인권결의안의 유엔 통과에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반 총장의 방북은 성사되지 않았다. 

반 총장은 올해 한국 국민에게 보낸 신년사에서도 “남북한 간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어떠한 일도 해나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떠한 일도 해나갈 것’이라는 말에는 방북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반 총장의 방북은 사실상 무산됐다.  

반면 홍 회장의 ‘통일카드’는 아젠다 세팅(Agenda-setting)이다.

홍 회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본부에서 개최된 ‘한반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제로 한 ‘중앙일보-CSIS 포럼 2016’ 개회사에서 “북한과 관련된 어떤 논의에서건 서울이 주된 역할을 맡는 게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일관된 주장을 해오던 홍 회장은 이번에도 “서울과 워싱턴은 권력 교체기에 정책을 놓고 밀접하게 협의해 새 정부 간에도 긴밀한 협력과 조율된 조치를 내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로 6회째인 이번 심포지엄에는 미국의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 특보, 마크 리퍼트 주한 대사, 한국의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서훈 전 국가정보원 제3차장, 안호영 주미대사 등 양국의 최고 외교안보 전문가 20명이 참석했다.

주목되는 부분은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현직 당국자로는 최초로 기조연설을 했다는 점이다.

미 국무부가 홍 회장의 행사에 참석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전체 프로그램이 한국시간으로 3일 오후 10시 15분부터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앞서 홍 회장은 2015년 12월 14일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가 개최한 민족공동체지도자과정 특강에서 ‘통일로 가는 길 : 매력국가’란 주제 강의에서 “한국이 남북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자임하고 (그 역할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홍 회장은 지난 4월 25일 한반도 포럼에선 “비핵화의 작은 진전이라도 확보하고 이를 동력으로 교류협력을 살려 상호 선순환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글로벌 아시아’ 2015년 여름호 기고문 ‘타성에서 벗어나기(Breaking out of the Rut)’에서 대화와 포용정책을 지지했다.

그는 2015년 6월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하는 32명의 지식인들과 1400㎞ 북·중 국경을 답사하며 ‘평화 오디세이’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홍 회장은 2015년 5월 28일 경희대 강연에서도 “남북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풀어나가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다’고 얘기하지만 통일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다. 가장 바람직한 건 경제공동체 문화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이다”고 했다.  

그런데 반 총장과 홍 회장은 왜 이처럼 경쟁적으로 통일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 누가 봐도 이는 차기 대권구도와 관련이 있다. 일종의 ‘외곽 때리기’다.

두 사람 모두 직접적으로 대권을 언급할 수 없는 처지여서 ‘통일카드’로 우회적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실제로 반 총장의 방북설이후 ‘반기문 대망론’이 확산됐다. 친박 핵심 홍문종 의원은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조합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20대 총선이후 ‘반기문 대망론’은 점차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새누리당의 참패 때문이다. ‘50대 기수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자 김종필(JP)전 총리가 나서 ‘반기문 대망론’을 지원했다. ‘반기문 대망론’의 기수였던 고 성완종 의원의 동생인 서산·태안 새누리당 성일종 당선인이 지난 4월 27일 서울 청구동 자택을 방문한 자리에서 JP는 “반기문 총장이 지난해 서신을 보내 임기를 마치면 귀향해서 찾아뵙겠다고 했는데 내가 ‘금의환향’ 하라고 답장해 줬다”고 말했다.

성 당선인은 “김 전 총리가 이 자리에서 “반 총장만한 사람도 없지 않느냐. 훌륭하고 좋은 인재다. 충청지역을 위해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전했다. 

지난 3일 충남 공주출신 정진석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된 것도 ‘반기문 대망론’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지난 2월 유엔 사무국 의전장으로 반 총장의 의전을 책임졌던 윤여철 전 외교부 의전장이 청와대 의전비서관에 임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홍석현 대망론’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2015년 5월 28일 경희대 강연 이후다.

홍 회장은 ‘새로운 한중일 시대와 대한민국의 꿈’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와 기회에 대한 정치 지도자들의 인식은 너무나 안일하다”고 지적하고 “아시아 최고 수준의 자유와 개방으로 세계의 인재와 자본 기술을 끌어들여야 한다. 나는 그걸 제3의 개국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 ‘제3의 개국론’이 ‘홍석현 대망론’의 불을 지폈다. 

홍 회장이 ‘통일 대통령’이란 큰 꿈을 갖게 된 것은 오래됐다고 한다.

원불교 사람들에 따르면 홍 회장은 젊은 시절 원불교의 3대 종법사인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 종사(宗師)를 만나 ‘통일 대통령’ 꿈을 키웠다고 전해진다.

대산은 전북 익산군 왕궁면 원불교 영모묘원(공원묘지)의 작은 비닐하우스에서 홍 회장이 ‘용금’(用金 : 어른에게 드리는 용돈)을 내놓자 “앞으로 이런 것은 가져오지 말고, 통일 대통령을 준비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대산은 종교적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특히 미래를 내다보는 예견력이 뛰어나 김구 선생, 이승만 전 대통령, 이철승 전 신민당총재, 조세형 전 의원 등 수많은 정치인들이 찾아와 자문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전주 출신의 이 전 총재의 ‘중도통합론’도 대산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홍석현 대망론’은 올해 들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홍 회장은 2016년 2월 19일 포스텍 명예공학박사 수락 연설에서 “천명(天命)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자도 오십이 되어서야 지천명(知天命), 그 뜻을 알게 됐다. 공자가 그 뜻을 실천한 것은 그로부터도 18년이 지난 나이 68세 때”라고 했다.

홍 회장이 68세가 되는 2017년이면 ‘천명(대권)’을 실천할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지난 3일 ‘중앙일보-CSIS 포럼 2016’이후 워싱턴 정가에서 ‘한국의 차기로 미스터 홍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홍 회장이 질 때 반 총장이 떴으니, 반 총장이 지니까 홍 회장이 뜨는 것인가. 운명의 절묘한 반전(反轉)이다. 

그럼에도 ‘홍석현 대망론’은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언론사 사주, 삼성X파일, 범 삼성가에 대한 국민적 거부정서를 극복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금수저’ 대신 ‘흙수저’로 서민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조한규 무죄네트워크 공동대표·전 세계일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