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밖 세상] 가장 부담스러운 날 돼버린 ‘어버이 날’
[렌즈 밖 세상] 가장 부담스러운 날 돼버린 ‘어버이 날’
  • 신아일보
  • 승인 2016.05.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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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 부국장

 
가정의 달 5월 첫째 주가 지났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동시에 있는 5월 첫주는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동시에 벅찬 기분을 느끼게 하곤 한다.

며칠 전 두 시간 거리에 사는 딸에게 전화가 왔다. 콧소리가 가득한 목소리로 “아빠~~~~~~” 부르는 것이 뭔가 요구할 것이 있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있으면 다가오는 어린이날에 할아버지로서 손주에게 무엇을 선물해줄지 고민하고 있을까봐 전화했단다. 그러면서 이제 막 돌 지난 작은 녀석의 자전거를 사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것이다.

뭐 애들 자전거 얼마나 하겠냐 싶어 알았다고, 금액과 계좌번호를 문자로 찍어두라고 하고서는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서 확인했더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별 기능도 없어보이는 조그만 자전거가 36만원이라는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름 신지식인답게 모델명을 찾아서 검색해봤더니 요즘 젊은 엄마들이 가장 선호하는 자전거인 모양이다. 백화점에서 사면 더 비싸고 그나마 인터넷으로 주문했을 때 가격이 36만원이라니, 실소가 나온다.

딸에게 부랴부랴 계좌이체를 해주고 전화를 걸어 손주 선물값 보냈으니 넌 어버이날 어떻게 할건지 고민해보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황금연휴를 맞아 딸네 가족이 어버이날을 기념한다고 오랜만에 놀러왔다.

오랜만에 보는 손주들이 반가워 근처 놀이공원에 갔더니 어린이날을 맞아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 10명 중 1명꼴로 이런 모양의 자전거를 타고 있다. 이렇게 값비싼 자전거가 집집마다 갖고 있는 필수품이 됐다니 참 세상 살기 힘들겠다 싶다.

그날 외출했다가 돌아오면서 저녁을 먹으러 간 곳에서 사위가 봉투를 건넨다.

“어버이날인데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는데 기사에서 보니 가장 반가운 선물 1순위가 현금이래요”라며 건네 준 봉투에 괜히 가슴이 짠하다.

수년 전 부모님께 사드릴 카네이션과 좋다고 소문난 영양제를 사러 다니러 발품 팔던 내 모습이 생각나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엔 예쁘게 포장된 카네이션 한 송이 가슴에 달아드리는 것도 녹록지 않았을 때가 많았다. 더욱이 어버이날은 휴일도 아니기에 얼굴 뵈러 가는것 조차 어려웠었다.

잠시나마 옛 생각에 젖었다가 손에 든 봉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직은 손주들도 어리고 제 가정 꾸리는 것도 벅찰 것 같아 사위에게 다시 돌려주면서 말했다.

“나중에, 나중에 장인 장모가 늙어서 힘없고 능력 없을 때 그때까지 적립해주게.”

그러자 딸이 얼른 받으시라고 성화다. 어린이날 자전거도 사주고 싶고 아빠 용돈도 드리고 싶은데 아빠가 자전거를 사주셨으니 자기는 맘 편히 아빠 용돈을 드릴 수 있다는 거란다.

아직은 쓸 게 더 많고, 버는 게 더 적을 젊은 세대들에게 이 가정의 달이 얼마나 벅찰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고맙게 받겠노라고, 인사를 하고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얼른 나와 밥값을 계산했다.

밥도 자기들이 사겠다고 신신당부를 했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4일간의 연휴를 즐기고 간 딸내미 가방에 몰래 봉투를 넣어뒀다.

그리고 오늘 가정의 달 지출 계획 관련 기사를 봤다. 어버이날 지출이 기념일 중 가장 크고 경제적 부담감 역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버이날이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날이 아닌, 사전적 의미답게 꽃 한송이 달아드리는, 얼굴 한 번 마주할 수 있는 그런 날이 되길 바란다. 

/이상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