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돋보기] 새로운 정치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세상 돋보기] 새로운 정치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 신아일보
  • 승인 2016.04.1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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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은 국민의 ‘집단 이성’이 지역감정을 퇴출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승리라고 평가된다.

사실 ‘지역감정’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박근혜 대통령을 거치면서 반세기가 넘게 한국의 망국병으로서 국민들의 목을 죄어왔다. 국가의 동량이 되고도 남을 만한 훌륭한 인재들마저 국회의원이 되면 모두 ‘거수기’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따금 거수기가 되기를 거부하는 의원도 있지만 그 같은 예외자는 배신자로 몰려 정치생명이 끝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

놀라운 일이지만, 제5대 대통령선거 당시만 해도 이 같은 지역감정은 없었다.

196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후보는 호남지역에서 238만표(49.3%)를 획득해서 야당후보인 윤보선 후보(34.6%)를 크게 앞섰다.

4년 후인 1967년 제6대 대선에서도 박정희 대 윤보선의 득표율은 호남지역에서 41.1%대 44.6%로 윤보선이 미세하게 앞섰을 뿐인데 영남에서 박정희가 62.6%로 몰표를 얻으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1971년 제7대 대선에서는 급기야 영호남이 본격적으로 갈라졌다. 호남지역은 김대중이 58.6%를 득표한데 반해 영남지역에서는 박정희가 73.6%라는 놀라운 몰표를 받았다. 이 후 영·호남의 지역감정은 완전히 노골화됐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소위 ‘3김’이 등장해서 지역감정을 이용해서, 막강한 권한이 행사됐고 그런 까닭에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이들 ‘3김’을 대부로 받들면서 ‘거수기’로 전락했다.

마지막(?) 지역감정의 대부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러나 ‘선거의 여왕’ 박 대통령의 마법은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당적을 9차례나 바꾸면서도 6번 당선됐던 이인제 같은 걸출한 정치인도 20대 총선에서 국민적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불사조로 불리는 이인제 의원이 자기 고향에서 낙선한 것은 최대의 이변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20대 총선은 불가사의한 국민적인 집단이성이 거대여당을 침몰시켰다.

최소 지역구 150석 이상을 몰아 쥐어 헌법 개정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됐던 여당이 과반수 의석은 고사하고 원내 제2당으로 전락하는 충격적인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아무도 이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국민들은 대부분 속내를 숨기고 투표장으로 갔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분들이 3년 전 열렬히 지지했던 ‘선거의 여왕’을 심판하기 위해 여당후보들을 낙선시켰다. 이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마치 천재지변과도 같이 정국을 강타했다.

서울의 49개 의석 중 야당은 35개 의석을 차지한데 반해 여당은 12개 의석에 불과했다. 여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자인 전임 서울시장이 낙선한 것을 비롯해서 여당 ‘잠룡’들이 무더기로 떨어졌다.

경기지역에서도 총 60석 중 더불어민주당은 그 3분의 2인 40석을 휩쓸었고 새누리당은 겨우 19명만이 당선됐다.

물론 이 같은 선거 결과는 새누리당에 대한 수도권 시민들의 심판이라고 언론계는 돌려 말하고 있다.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라고 왜 말하지 못하는가?

국민들은 대통령의 ‘불통’을 심각하게 본 것으로 그 결과가 이번 총선 표심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여당의 ‘거수기’들을 모두 떨어뜨린 것이다.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과 제3도시인 대구에서도 부분적이지만 표심은 이렇게 나타났다.

‘선거의 여왕’은 자기 시대가 가기도 전에 국민적 심판을 맞고 말았다. 이로써 한국의 정치판은 반세기가 넘는 그 재앙의 ‘지역감정’을 벗어나 새로운 혁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본다.  

/이해청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