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 ‘가족’이 붕괴되고 있다
[칼럼] 대한민국 ‘가족’이 붕괴되고 있다
  • 신아일보
  • 승인 2016.03.23 1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상진 충청취재본부장

 
우리나라는 옛날 중국인들로부터 예의를 잘 지키는 동쪽의 나라라는 말로 ‘동방예의지국’(東邦禮義之國)이라고 불렸다.

중국의 공자도 뗏목이라도 타고 조선에 가서 예의를 배우는 것이 자신의 평생소원이라고 했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어른 공경’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또 자기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돈과 노력, 희생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 역시 대개 우리들의 부모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가족 문화는 서구의 개인주의적 문화와는 달리 부모와 자녀가 동일체 관계로 해석되곤 했다.

실제로 2011년의 한 연구결과에서는 서양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느끼는 호감이나 존경의 극치를 동일시(identification)로 볼 수 있다면, 한국에서는 동일시보다 동일체(oneness)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가족’은 ‘우리’라는 말에 제일 어울리는 말로,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족 문화는 어쩐지 많이 혼란스러워 보인다.

언론들은 최근 앞다퉈 ‘비속(자식) 살해’ 사건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배우자나 자신의 존속(부모, 조부모)을 살해한 ‘존속 살해’ 역시 언론보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건 중에 하나다.

이런 사건들이 요새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묻혀서 몰랐던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경찰청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은 2011년 총 1285건에서 2014년 1022건으로 20.4% 줄었다.

하지만 이 중 가족 간 살인 및 살인미수는 20%에서 23%로 오히려 늘었다. 2011년 3건, 2012년 12건, 2013년 12건, 2014년 8건, 지난해 8건으로 친족 간 살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꼭 이 같은 통계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족관계가 점점 약화되고 해체되고 있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지 않을까.

자식은 부모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걱정도 끼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굳이 캐물으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가족 붕괴’는 여러 가지 사회의 변화요인들이 작용하면서 나타난다.

그 중 제일 큰 이유는 문화의 흐름이 바뀌며 가족 간의 유대관계와 가족에 대한 의무감 같은 것들이 과거에 비해서 굉장히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내놓고 있는 아동학대 신고 문화 정착 등의 대책들을 보면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그 가족을 도와주겠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타깝게도 후속 대책은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 후속 대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정부뿐만이 아니라 지자체, 사회단체, 개인 등 우리 모두도 제도 정비와 함께 인식 전환에 힘써야 한다.

한국사회 특유의 ‘가족은 나에게 귀속된 존재’라는 인식이 더 깊숙이 자리 잡기 전에 사회적 전반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질만능의 쾌락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주의, 사회지도층의 도덕성 실종, 흉악 범죄 증가 등 인명경시 풍조의 확산을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

한국사회는 현재 물질적인 풍족한 자본주의를 넘어서 정신적,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본주의로 만들어 가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범정부적으로 부정부패의 척결과 기초질서 확립에 충실한 전통적 윤리도덕의 부활운동을 전개해야만 올바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말뿐이 아닌 실천 가능한 복지인프라를 구축해 빈곤·실업·질병·재해·장애·노령·사망 등 각종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의 질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끝으로 정부가 최근 전수조사 등으로 아동학대나 가족사회의 문제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도록 한 것은 비교적 다행이다.

그러나 손놓고 있던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다시 구축하기 위해선 몇 갑절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부가 하루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디 한국사회가 다시금 가족이라는 품 안에서 새출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박상진 충청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