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세돌과 인공지능의 역사적 대국을 보면서
[칼럼] 이세돌과 인공지능의 역사적 대국을 보면서
  • 신아일보
  • 승인 2016.03.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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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공지능(AI)의 바둑대결, 시작할 때만 해도 그렇게 흥미진진하진 않았다.

이세돌 9단의 우세가 점쳐졌었고 컴퓨터 따위가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머리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세돌 역시 5 : 0 혹은 4 : 1의 승리를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판을 열었을 때 예상은 빗나갔고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인공지능 알파고는 심히 대단한 존재였다. 첫승을 내어줬을 때만 해도 알파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었다.

‘반신반의’라는 말이 맞겠다. 이세돌의 컨디션이 난조였거나 알파고의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2승, 3승 알파고의 능력이 드러나면서 인간 대 인공지능의 싸움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고 있었다.

수많은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향했고 한국은 물론 중국,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그를 향한 관심이 집중됐다.

그만큼 이세돌의 부담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기자 역시 바둑의 ‘ㅂ’자를 간신히 아는 단계임에도 훈수 아닌 훈수를 두며 연일 TV중계에 매달리곤 했다. 남은 경기를 다 이긴다 해도 이미 진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세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제4국 78번째 돌은 신의 한 수였다. 이세돌이 던진 묘수에 알파고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알파고는 ‘resigns’이라는 팝업창을 띄우며 기권을 선언했다.

슈퍼컴퓨터 1202대가 연결된 인공지능, 1초당 10만 가지 수를 계산한다는 알파고에게 잡은 첫승은 모든 사람을 흥분케 했다. 일부에서는 “인간의 반격”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세돌의 첫승이 확정되자마자 난 소리를 질렀다. 순간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중계를 보고 있었는지도 잊은 채 말이다.

달리는 버스 안, 휴대폰을 통해 이세돌의 경기를 지켜봤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 누구하나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되레 옆에 젊은 아가씨가 내게 물었다.

“이세돌 이겼어요?”

맞다고 대답을 하고 보니 그 아가씨는 이제 막 스무살이 된 거같은 앳된 모습이었다. 순간 이렇게 젊은 사람들도 바둑이라는 종목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실 바둑은 일부 애호가들을 빼놓고 어르신들이 취미삼아 두는, 일종의 고리타분한 게임 정도요, 또한 아이들 두뇌 발달에 좋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때 동네 바둑학원들이 성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에서 바둑기사 이창호를 모티브로 한 최택이 등장하면서 젊은이들의 관심이 조금 높아진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온 국민이 바둑 얘기로 하나 되고 있다.

그날 저녁 찾은 동네 포장마차에서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바둑 이야기가 나오자 주인 아저씨를 비롯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세돌 대단해요”라며 자기일 처럼 가슴 뿌듯해했다. 이후 이어지는 찬사와 알파고 능력에 관한 얘기로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하나 됐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각자 자리하고 있는 그곳에서 2002년 월드컵 때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벌어진 것이다.

바둑으로, 이세돌이라는 사람으로 온 국민이 기뻐할 수 있고 공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대국이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제4국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세돌 9단은 마지막 경기 때 흑으로 이겨보고 싶다고 밝혔다. 흑으로 이기는 게 더 값어치가 있어서 해보고 싶단다.

누군가는 포기하라고 했었다. 이미 진 게임이니 4국은 필요 없다며 종용한 이도 있었다. 상당한 압박감 속에 치러진 대국에서 내리 3연패를 하고 난 뒤라 더욱 쓴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세돌 9단은 그에 굴하지 않고 표정도 밝고 또 당찼다. 그리고 첫 승을 따냈다. 3연패 이후 알파고의 문제점들을 간파했으리라 판단됐다. 그의 이번 첫승은 인간의 자존심을 살린 위대한 승리였다.

내일 드디어 마지막 제5국이 치러진다. 이기든 지든 결과는 중요치 않다. 인간 대 인공지능이라는 놀라운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을 목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롭다.

다만 충분히 힘들었을, 충분히 부담스러웠을 이세돌 9단에게 끝까지 힘내줘서 고맙다고, 나 또한 당신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다고 말해주고 싶다.  

/강정근 경북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