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저성과자 해고 해당될까"…판례로 본 해고기준
"나도 저성과자 해고 해당될까"…판례로 본 해고기준
  • 온라인뉴스팀
  • 승인 2016.01.24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한 평가'·'개선 기회 부여'·'예외 인정' 3대요건 충족해야

고용노동부가 22일 저성과자 해고를 뜻하는 '일반해고' 지침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엄격한 기준과 절차를 갖추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장담에도 '월급쟁이'들의 불안은 크기만 하다. '내가 혹시 저성과자 해고에 해당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그 불안을 덜기 위해서는 저성과자 해고 기준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해고 관련 판례들이 어떻게 쌓였는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판례 내에서 지침을 만들었다고 정부가 공언했기 때문이다.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된 다양한 판례를 분석해 이 같은 불안을 덜어보자.

◇ '공정한 평가' 없으면 저성과자 해고는 무효
건설업체 기술직이던 A씨는 인사고과 결과에서 4회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이 회사는 매년 2회 직원들의 근무성적을 평가해 'S·A·B·C·D·E' 등 6개 등급을 매겼다.

언뜻 보면 저성과자 해고에 해당할 것 같지만 2006년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회사의 근무성적 평가는 평가자가 50여개 항목에 대해 'Yes' 또는 'No'를 체크하면 이 점수를 합산해 평가등급을 매기는 방식이다. 평가자의 주관적인 판단을 수치화한 '정성평가'이자, 근로자들을 서로 비교해 순위를 매긴 '상대평가'에 불과하다.

법원은 "절대평가 방식이 아닌 상대평가 방식이므로 단지 인사고과에서 최하위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로 근로자의 업무능력이 객관적으로 불량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저성과자 해고는 근로자의 영업실적, 생산량 등 객관적인 수치를 토대로 한 '계량평가'와 개인별 일정 목표를 정해놓고 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절대평가'를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평가의 신뢰성을 얻기 위해서는 복수의 평가자를 두거나, 여러 평가단계를 둬야 한다. 특히, 다면평가에서 상급자 외에 하급자, 동료, 노조 등 평가를 포함할 경우 공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대법원은 3명의 상급자와 여러 동료들은 물론 노조 지부장까지 직무수행능력 및 근무태도의 불량함을 인정한 유통업체 판매직 B씨에 대해 '원고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저성과자도 실질적인 개선 기회 주지 않으면 해고 'NO'
공정한 평가를 거쳐 저성과자로 선정됐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해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저히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되면 먼저 실질적인 교육훈련을 통한 능력개발의 기회를 줘야 한다. 훈련 이후 개선이 없어도 재도전 기회를 줄 수 있는 배치전환 등 적극적인 해고회피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퇴출'을 목적으로 형식적인 업무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업무실적을 기대하기 힘든 곳으로 일부러 배치전환을 한 기업은 부당해고 판결을 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모 건설업체는 영업직 부장으로 근무하던 C씨에게 '현장직무실습'이라는 명목으로 단순노무 및 청소 업무를 시킨 후 대기발령을 내 버렸다. 대전고등법원은 "이 사건의 경우 대기발령은 근로자를 퇴사시키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볼 수 있다"며 C씨의 손을 들어줬다.

D씨가 영업직원으로 일했던 증권사는 그의 인사평가 결과가 낮다는 이유로 상담역으로 전보시켰다. 이후 책상, 컴퓨터, 전화 등 영업을 위한 사무기기나 자료도 제대로 지원하지 않은 채 영업실적을 평가하고 대기발령을 명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업무실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근로여건을 조성한 상황에서 저조한 실적을 이유로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 역량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해고해도 '불인정'
근로자의 업무능력이나 성과가 낮더라도 그 이유가 근로자 본인이 아닌 특수한 사정이나 주변 여건에 있는 경우 해고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예로는 노조 전임 등 파견 복귀, 업무상 재해로 인한 휴직, 출산·육아휴직 후 복귀, 전직 명령 후 1년 이내 등이 해당된다.

대법원은 표면적으로는 결원 충원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근로자의 노동조합 가입 및 활동을 봉쇄하려고 전보 발령을 내린 회사의 명령에 불응하다 해고된 E씨의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F씨는 비철금속 선물거래를 하면서 사측에 1천800만원 가량의 손해를 끼쳐 해고당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업무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수습 근로자로 채용한 후 3개월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업무능력 부족을 이유로 해고한 것은 정당한 해고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쳤음에도 근로자가 개선 노력을 게을리해 성과가 끝내 개선되지 않거나, 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때는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다.

근로자 G씨는 1986년 입사해 2006년부터 영업본부 차장으로 고객 상담업무를 맡았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인사평가에서 매년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이에 사측은 G씨를 직무능력 부진자 등의 능력 향상을 위한 '역량 향상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G씨는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아 재교육 대상자 중 성적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0년 2월 사측은 그를 해고했다. 중앙노동위원회와 법원은 G씨가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중앙노동위원회 판정 사례를 분석한 결과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부당해고 구제신청 3만5천335건 중 '업무성과 부진'만을 이유로 해고한 것을 정당하다고 본 사례는 11건에 불과했다.

다만, 정부가 일반해고 지침 도입을 공식화한 지난해 낮은 업무성과를 이유로 한 해고 등은 183건으로 2011년(114건)에 비해 60%가량 늘었다. 아직 판정이 나오지 않은 사건까지 합치면 지난해 저성과자 해고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민노총은 보고 있다.

기간제 비정규직에 대한 저성과자 해고는 2014년 36건에서 지난해 67건으로 급증했다.

민노총은 "노동위원회가 정부 정책에 따라 판정기준을 흔드는 일이 없도록 노동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정부 출신이나 노동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공익위원 위촉을 제한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아일보] 온라인뉴스팀 web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