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돋보기] ‘국부’
[세상 돋보기] ‘국부’
  • 신아일보
  • 승인 2016.01.2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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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케말 파샤는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조국을 구해낸 전쟁영웅이다.

재미있는 일화로 그는 1930년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면서 “모든 창녀는 히잡(가리개의 하나)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있는 법안을 제정했다.

터키 여성들은 창녀가 되지 않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써왔던 ‘히잡’을 벗어던져야 했다.

그는 이슬람권에 속한 터키 여성들을 법률과 관습으로부터 해방시킨 100년을 앞서간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그의 민족적, 군사적, 정치적인 업적은 세계적인 영웅수준이었다.

쑨원은 혁명가로 또 사상가로 대만과 중국의 국부로 존경받고 있다. 그는 의사출신이지만 평생을 ‘중국을 위해 바친’ 애국지사다.

미국은 워싱톤이 국부이며 싱가포르는 리콴유, 프랑스는 드골, 이탈리아는 가리발디가 국부로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기타 많은 국가들도 국부가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유감스럽지만 국부가 없다.

그래서인가? 최근 국민의당 한상진 창당위원장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위상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과제”라며 “대한민국을 세운 공적에 유의해 국부에 준하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국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는 여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한 끝에 급기야 대국민 사과를 하게 됐다.

한상진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우리도 국부를 갖고 싶다는 충정에서 비롯됐다고 보여진다.

케말 파샤나 쑨원 같은 국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비단 한상진 위원장만의 생각은 아니며 많은 국민들이 이를 소망하고 있다.

하지만 사정이 아무리 그와 같다고 해도 이승만을 국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절대로 금기시해야 한다. 세월이 갈수록 그의 죄악이 너무나 악독하고 심대하게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죄악은 일일이 나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같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점은 그는 무고한 양민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있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는 과오나 범죄의 차원이 아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행이 60여 년 전에 한반도를 시산혈해로 뒤덮었던 것이다.

일부 주장에 의하면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이승만정권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은 물경 100만명에 이른다. 전남북에서 약 20만명, 보도연맹 학살의 30만명 등을 포함해 함평, 문경, 대구, 부산, 함양, 산청, 거창, 충무, 거제 등 영남지역에서 민간인들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마치 공놀이 하듯이 우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김일성이 잘했느냐? 이승만이 잘했느냐? 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빨갱이다 파랭이다 하는 이데올로기 문제도 아니고 가치관이나 철학적인 문제도 아니다. 이는 인간이 인간을 가축처럼 도륙해도 되느냐 마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된다.

거창학살의 경우 일본제국주의에 충성했던 똥 별들이 촌락에 처들어가 부락민을 초등학교에 집합시켜놓고 불문곡직 500여명을 총살했다.

서울시내에서 군인이 사람을 100명만 죽여도 우리나라는 아비규환을 이룰 것이다. 그런데 죄 없는 양민을 무려 100만명이나 도살했으니 도저히 상상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산 채로 생매장해 죽이는 등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잔인한 방법들이 다 동원됐다. 이승만이 국부라니? 정말 학살당한 100만명의 양민들이 도살장의 돼지만도 못하다는 것인가?

이승만이 독립자금을 착복하고, 친일파들을 대거 등용했으며, 애국지사를 차례로 암살했고, 국방업무에는 등신이나 다름없었으며, 헌법을 유린하면서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등 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런 것은 양민학살에 비하면 얘깃거리도 안 된다.

그를 ‘국부 운운하는 것’만으로도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국부를 원한다면 김구 선생을 국부로 모시면 어떠할지 되묻고 싶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분명히 대한민국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받는다고 명시돼 있다.

김구 선생은 쑨원에 버금가는 애국지사다.

독립전쟁과 일제 원흉들을 처단하는데도 혁혁한 무공을 전 세계에 유감없이 떨쳤다. 해방된 지 반백년이 넘었다. 국부에 대한 올바른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해청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