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자, 대부분 자수성가 아닌 '金수저'
한국 부자, 대부분 자수성가 아닌 '金수저'
  • 신혜영 기자
  • 승인 2016.01.0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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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대 부호 모두 창업가… 이해진·김범수 이후 국내 신진 부호 없어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부터)

외국의 자수성가한 창업가들이 세계 10대 억만장자에 이름을 올리고 잇는 반면, 한국의 부호들은 기업을 상속받아 키운 이른바 '금수저'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4일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0일 기준 세계 부호 상위 400명을 부의 원천에 따라 분류했을 때 65%인 259명은 자수성가(self-made), 나머지 141명(35%)은 상속(inherited)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400위 안에 든 한국 부호 5명은 모두 상속자였다.

이들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벌 2∼3세다.

반면 세계 최고 부자인 빌게이츠를 비롯해 버크셔 헤서웨이 CEO 워런 버핏, 아마존닷컴 설립자 제프 베조스 등 상위 10명은 모두 자수성가했다.

억만장자가 가장 많은 미국의 경우, 세계 랭킹 400위 안에 포함된 125명 가운데 자수성가한 사람이 89명으로 71%를 차지했다.

아시아 부호 80명 중에서도 63명(70%)은 자수성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가까운 중국은 400위 안에 든 부호 29명 가운데 28명이, 일본은 5명 모두가 스스로 성공했다.

러시아는 18명 모두, 인도는 14명 중 9명(64%)이 자수성가 부호였다. 다만, 유럽은 자수성가 부호가 54명으로 상속 부호(55명)보다 1명이 적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생 가운데 창업을 희망한 사람은 6%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분위기인데다 창업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아 창업 활기가 저조하다고 분석했다.

부모로부터 상속한 부에서 얻는 수익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나왔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논문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에 따르면 상속·증여가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은 1980년대 연평균 27.0%에서 2000년대에는 42.0%로 크게 늘었으며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로 한국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현저하게 적다.

CEO 스코어의 지난해 12월1일 기준 상장사 주식부호 상위 10명 가운데 창업자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진 삼성물산 사장 등 재벌 3세들이다.

창업 부자는 30위 안에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등 6명(20%), 100위 안에는 25명(25%)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창업 부호가 많이 나오지 못하는 핵심 배경으로 틀에 박힌 자본시장이 창업에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와 정부의 각종 규제를 비롯한 제도적 한계, 창의성을 살리지 못하는 교육 등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꼽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임상혁 상무는 "직업 수가 우리는 1만개, 미국은 3만개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규제 때문에 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이 제한된 것"이라면서 "기업이 커질수록 수많은 규제가 생기기 때문에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이 공무원이나 의사가 되기를 바라지 창업을 권하지는 않는다"면서 "안정 지향형으로 가는 사회 풍토부터 문제"라고 말했다.

[신아일보] 신혜영 기자 hyshi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