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서울시향 잘했어. 안녕히"… 31일 프랑스로 출국
정명훈 "서울시향 잘했어. 안녕히"… 31일 프랑스로 출국
  • 문경림 기자
  • 승인 2015.12.3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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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정기공연, 음반 녹음, 해외 공연 차질 불가피
▲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송년음악회에서 서울시향 감독으로서 마지막 지휘를 끝마치고 차량에 탑승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년 동안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끌며 아시아 정상에 올려놓은 정명훈 감독이 전날 10년간 동고동락한 서울시향과의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31일 부인 구모(67)씨가 머물고 있는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이날 오후 2시 프랑스 파리행 대한항공편으로 출국한 정 감독 곁에는 아들인 지휘자 정민(31) 등 가족이 함께 했다.

정 감독이 이날을 끝으로 감독직을 그만두고 내년 예정된 공연도 지휘하지 않기로 하면서 서울시향의 내년 일정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 감독은 2005년 서울시향에 예술고문으로 영입된 2006년부터 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아왔다.

최근 3년 재계약으로 가닥이 잡히는 듯했으나,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의 '막말·성추행' 의혹이 자신과 부인 구씨의 비리 의혹으로 번지고 서울시향 이사회에서 재계약이 보류되자 결국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호소문을 통해 박 전 대표가 직원들에게 일상적인 폭언과 욕설, 성희롱 등으로 인권을 유린했다며 공개 퇴진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박 대표의 직원 인권침해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발표했고, 박 전 대표는 결국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본인의 혐의는 부인했다.

이후 서울시향 직원 10명은 박 전 대표를 강제추행, 성희롱,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박 전 대표는 직원들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경찰에 진정서를 냈다.

경찰은 지난 8월 박 전 대표의 강제추행 혐의 등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의견으로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박 전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서울시향 직원 곽모씨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법원은 "관련자들의 진술이 명확하지 않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서울시향에 대한 3차례의 압수수색 등을 통해 곽씨의 투서·고소 과정에 정 감독의 비서인 백모씨가 연루된 정황을 발견하고 백씨를 출국금지했다.

이어 이달 중순 정 감독의 부인 구 모 씨를 백 씨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실체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돼 입건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침묵을 지키던 정 감독은 29일 사의를 밝히면서 단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서울시향이 지난 10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이 한 사람의 거짓말에 의해 무색하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며 박 전 대표의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이어 정 감독의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평도 보도자료를 내고 정 감독의 부인은 인권침해를 당한 직원들이 권리를 찾도록 도와줬을 뿐 허위사실 유포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정 감독의 서한이 언론에 공개되자 박 전 대표는 바로 다음날인 30일 정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의 글을 각 언론사에 배포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시하는 정 감독이 지난 13개월 동안 제(박 전 대표) 삶은 어떨지 상상해 보셨느냐"며 박 전 대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정 감독의 주장은 "명예훼손"이자 "인격 살인"이라고 다시 반박했다.

박 전 대표는 조사가 지연되면 진실규명도 요원해진다며 10개월 넘게 해외 체류중인 정 감독의 부인과 입원중인 비서 백 씨가 경찰 조사에 협조하고, 정 감독도 일부 시민단체가 제기한 항공료 횡령 혐의 수사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정 감독 변호인단은 "그동안 경찰은 추후 수사 과정에서 조사할 수도 있다고만 했지 실제로 정 감독과 부인에게 정식 협조 요청이나 소환을 한 적은 없다.하지만 추후 경찰에서 협조요청을 해온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조사에 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송년음악회에서 서울시향 감독으로서 마지막 지휘를 했다. 사진은 이날 음악회 모습. ⓒ서울시립교향악단
한편, 정 감독은 지난 30일 서울예술의전당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서울시향을 지휘했다.

정 감독은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한 뒤 단원 85명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연주가 끝나자 1층에서 3층까지 가득 메운 2300여명의 관객들은 환호와 함께 모두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거장을 배웅했다.

많은 단원이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고개를 떨궜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관객들도 곳곳에서 눈물을 보였다.

정 감독은 관객 30여명이 전달한 꽃다발과 장미꽃을 단원들에게 안긴채 가슴에 손을 얹고 관객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백스테이지에서 약 20분 간 단원들과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눈 정 감독은 기자들을 만나 "잘했어 너무 잘했어. 오케스트라도 축하하고 너무 잘했어"라고 말했다. "(서울시향이) 계속 잘하기를 바란다"고 축복했다.

정 감독이 일궈낸 성과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쓸쓸한 퇴장을 한 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서울시향이다.

내년 정 감독이 지휘할 예정이던 정기공연 9회를 비롯해 음반 녹음, 해외 연주 등에 대해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당장 내달에만 3차례의 공연에 대체 지휘자를 투입해야 한다.

9일은 브루크너 교향곡 9번, 16∼17일에는 말러 교향곡 6번이 예정돼 있다.

서울시향은 대체 지휘자 물색에 나섰으나 두 작품 다 난곡인데다 일정이 촉박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말러 교향곡 6번은 당초 공연 실황을 녹음,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음반으로 발매할 계획이었으나 이것도 사실상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하반기 중국 공연 등 해외 공연도 재협의가 필요하게 됐다.

정 예술감독 후임자 선임 문제 등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향후 서울시향 이사회에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향은 내년 정 예술감독이 지휘하기로한 공연 예매자들의 환불 문의가 이어짐에 따라 내주중 정책을 확정해 구매자들에게 공지할 예정이다.

[신아일보] 문경림 기자 rgmoo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