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신드롬… 너도나도 “바로 내 얘기야!”
응팔 신드롬… 너도나도 “바로 내 얘기야!”
  • 온라인뉴스팀
  • 승인 2015.11.2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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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12.2%·SNS 화제성 압도… 쌍문동 5인방 등 캐릭터 생생
“1980년대 청소년기 보낸 세대, 안락하고 아득했던 시절로 기억”
 

학교 공부만 빼고 뭐든 잘하던 동네 형은 진짜로 있었다. 우표를 수집하고 정갈하게 글씨를 쓰며, 정성껏 엽서에 사연을 적어 라디오 프로그램에 수시로 보내던. 정봉이는 옆집에 있던 오빠요, 형이다.

또 독서실만 가면 프라임 영어사전이나 정석을 벤 채 잠을 달게 자는 학생들이 있었다.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잤다. 덕선이는 아랫집에 살던 아이였다.

‘응답하라 1988’은 지난 28일 방송된 8화에서 평균 시청률 12.2%, 최고 시청률 14%를 기록하면서 역대 ‘응답하라’ 시리즈 최고 성적인 ‘응답하라 1994’의 11.9%(마지막 21화)를 뛰어넘었다.

‘응답하라 1988’ 인기의 일등공신은 살아있는 캐릭터다.

1988년에 태어나지도 않은 현재의 초등학생부터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40~50대까지 이 드라마를 보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살아있는 캐릭터의 재미와 그들이 부딪히며 내는 하모니가 살갑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EBS TV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출연자들이 ‘응답하라 1988’에서 성균과 덕선이 즐겁게 주고받는 “아이고 김사장~ 반갑구만 반가워요”를 요란하게 흉내내고, 극중 선우-정환-동룡이 춤추며 불렀던 ‘어젯밤 이야기’의 소방차가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응답하라 1988’의 존재감을 설명한다.

쌍문동 골목 친구 5인방처럼 1988년에 고등학교 2학년이 아니었다고 해도, 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너나 할것 없이 ‘응답하라 1988’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 이는 5인방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하나하나 살아있어, 나이를 건너뛰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꿈보다 해몽… “바로 내 얘기잖아”

시청자들은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저마다의 기억으로 1988년을, 1980년대를 기억해내며 웃고 운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운다고 고백하는 것은 드라마의 정서와 시대상이 자신의 아련하고 애틋한 추억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려니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앞다퉈 자신만의 해몽을 내놓고 있다.

예비군복을 불량하게 걸친 채 동시상영극장을 찾았고, 소독차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지나가면 소리를 지르며 좋다고 그 뒤를 쫓아달렸다. 경주로 간 수학여행에서 수십명이 바퀴벌레 나오는 큰방에서 한데 엎어져서 잤고, 엄마 심부름으로 집앞 가게에 두부와 콩나물을 사러 갔다왔다.

오락실에서 갤러그 오락을 하며 초 집중해서 미친듯이 손가락을 튕기고, 자다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동치미국을 한 사발 들이켰으며, 3단 보온밥통을 두개씩 들고 등교했다.

하지만 대치동 은마아파트 한 채가 5000만원이고, 은행 금리가 15%하던 ‘판타스틱한 시절’에 대한 기억이 사실 지금 얼마나 정확하고 생생할까. 또 그 기억이 드라마의 배경인 1988년의 기억인지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러나 상관없다. 시청자는 잊고지냈던 어린시절 친구가 연락을 온 것처럼 반갑게, 혹은 상상도 못했던 신기한 시절을 호기심 어리게 소비하면서 나이를 떠나 ‘응답하라 1988’에 빠져들고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사람들이 과거를 떠올리면 나쁜 기억이 나기도 하지만 비율적으로 좋았던 것을 더 많이 기억해 낸다”면서 “지나고 보면 좋았던 것 같고, 그때가 지금보다 편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쌍문동 골목 친구들… 그리고 보라·정봉

화장을 귀신같이 덕지덕지하고 맥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며 공부와는 담을 쌓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덕선의 해맑고 씩씩한 모습은 88년에만 유효하지 않다.

한영사전을 펴본 적이 없어 새하얗고, 어떤 때는 뇌가 없어 보일 정도로 백치미를 과시하지만 깡과 배짱, 착한 마음씨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얼굴도 예쁘다. 이런 애 꼭 있다.

일차로 수학을 포기했고, 이차로 대학을 포기했다고 선언한 동룡은 ‘쌍문동의 박남정’이라는 별명처럼 춤꾼이다. 교복 입고 현란한 춤사위를 펼치면서, 잔머리가 탁월하게 발달한 동룡은 ‘하필’ 자기 학교 ‘학주’(학생주임)의 아들이다. 실제로 당시 학생들에게 하늘 같고, 무서웠던 선생님의 아이들이 다 모범생은 아니었다.

공부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며, 햄 반찬에 비싼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까칠한 정환과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않지만 공부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며 성격마저 좋은 선우는 이 드라마에서 여심을 사냥하는 4번 타자로 등장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기억 속에는 이런 아이들도 비슷하게 남아있다.

다만 천재 바둑기사를 이웃으로 두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 극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드라마는 택이가 바둑 외에는 모든 면에서 어수룩한 점을 부각하며 ‘상등신’이라는 별명을 붙임으로써 매사 서툴렀던 어떤 친구에 대한 기억을 일깨웠다.

인터넷에서는 드라마 초반 동물원의 ‘혜화동’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정지 화면을 통해 이들 쌍문동 골목 친구 5인방의 어린시절을 조명한 대목이 가슴을 쳤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1980년대 주택가 골목길에 대한 기억이 있는 시청자라면 누구나 가슴 한켠 매일같이 어울려다니던 골목 친구들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났을 것이다.

드라마는 이들 5인방의 뚜렷한 개성을 부각하면서도 이들이 10여 년간 한결같이 붙어다니며 끈끈한 우정을 쌓은 시간들에 애틋함을 부여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여기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예요”라면서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도 부딪혀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를 결연하게 부르고 가래를 뱉어가며 아버지 몰래 담배를 피우는 보라의 다분히 ‘시크’한 모습도 이 드라마의 묘미다. 공부는 잘하지만 ‘못돼 쳐먹고 이기적인 언니’인 보라의 불같은 성질은 은근히 톡 쏘는 맛이 있다.

또 보라와는 정반대로 순하기 그지없는 대입 6수생 정봉의 한 템포 쉬어가는 엉뚱함도 드라마의 캐릭터를 풍성하게 하며 채널 고정을 이끈다.

[신아일보] 온라인뉴스팀 web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