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이야기] 서민 잡는 서민금융 ‘햇살론’
[금융이야기] 서민 잡는 서민금융 ‘햇살론’
  • 신아일보
  • 승인 2015.11.08 16: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흥수 기자

 
‘이이제이(以吏制吏)’란 말이 있다.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잡는다는 뜻이다.

요즘 고금리 대출중개업체들이 서민금융 정책상품인 ‘햇살론’을 악용해서 서민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모습을 보면 이이제이 전략으로 달두를 함락시킨 수나라 시대의 전략가 장손성의 후예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햇살론’은 고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저신용·저소득 서민들에게 10% 미만대의 저금리로 자금을 공급해 주는 정부의 대표적인 서민금융 정책상품이다.

그런데 이 ‘햇살론’이 고금리 대출 중개업자들의 미끼가 되어 서민들을 악성채무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9월 TV대출광고 규제 이후 많은 고금리 대출업체(대부업체, 저축은행 등)들의 대출중개업체 등을 통한 마케팅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게 됐다.

대출중개업체들은 대부분 온라인 광고 등을 통해 소비자들을 모집하는데 대출중개업체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내세우는 얼굴마담격 상품이 바로 ‘햇살론’이다.

광고는 ‘햇살론’ 대출을 알선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광고를 보고 찾아간 소비자들 중 ‘햇살론’ 대출을 받는 소비자는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법정최고 금리를 적용받는 대출상품을 알선 받는다.

‘햇살론’이라는 서민금융 정책상품에 낚여 고금리 채무의 늪에 빠지게 되는 구조다.

한 대출중개업체의 사장은 “우리에게 대출상담을 와서 대출을 받은 채무자는 2년 이내에 법원에 파산이나 개인회생 신청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며 “우리는 중개수수료 수입을 많이 올리기 위해 소비자에게 최대한 많은 액수와 최고 이자율이 적용되는 상품을 안내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중개업체에서 대출알선을 받은 채무자의 정보를 보관하다가 일정 시간이 흐르면 소비자가 파산이나 개인회생 신청을 하는 데 필요한 변호사 비용을 대출해 주는 이른바 ‘회생론’ 대출까지 알선해 준다고 한다.

지난 해 발표된 KDI의 자료에 따르면 저축은행에서 ‘햇살론’ 대출을 받은 채무자들 중 55.9%가 일주일 이내 다른 대출을 받는 복수대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햇살론’을 취급하는 여타 상호금융기관의 복수대출비율은 1.5% 이내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KDI의 오윤해 연구원은 “대출모집인들이 자신들의 수수료 수입을 위해 소비자들에게 최대한 고금리·고액의 대출상품을 판매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라며 “저축은행이 운영하는 대출모집인제도가 서민들의 재정 상태를 파산으로 내몰고 있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햇살론’이라는 미끼로 서민들을 유인하여 온갖 고금리 상품을 얹어 판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햇살론’을 이용한 저축은행업계의 서민대상 고혈 빨아먹기는 ‘햇살론’의 출시와 동시에 시작된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 부산저축은행이 채무자들에게 서민금융 정책상품인 ‘햇살론’ 대출을 받아 빚을 갚으라는 독촉장을 보낸 사건이 지적됐다.

부산저축은행에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채무자들을 대상으로 보낸 독촉장에는 외환카드 연체자금을 친인척 명의로 ‘햇살론’ 대출을 받아 변제하라는 등 ‘햇살론’을 이용해서 빚을 변제하라고 여러 가지 방법들을 권유하고 있었다. ‘햇살론’이라는 상품이 출시된 것은 2010년 7월로 상품출시와 동시에 저축은행업계의 전형적인 정책자금 빼먹기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를 두고 한 대부업계의 관계자는 “우리도 저런 철면피한 짓은 하지 않는다”며 “돈 독 오른 사채업자나 하는 짓”이라고 저축은행업계를 질타했다.

서두에 표현한 ‘이이제이’ 전략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고금리 대출업자들의 모습이다.

“정부에는 정책이 있고 우리에게는 대책이 있다” 한 대부업자가 정부의 서민금융정책을 비웃으며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