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회장직은 내 운명”
최불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회장직은 내 운명”
  • 온라인뉴스팀
  • 승인 2015.11.0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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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후원회장 30주년
 

“내가 운명론자예요. 내가 찾아나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저절로 내 앞으로 왔어요. 난 그걸 사명처럼 받아들였을 뿐이죠. 그러다 보니 벌써 35년이 훌쩍 흘렀네요.”

‘국민 배우’, ‘국민 아버지’, ‘양촌리 김회장’, ‘수사반장’….

많은 수식어로 설명되는 배우 최불암씨(75·사진)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되고 의미 있는 타이틀은 따로 있는 듯하다. 바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이다. 그는 이를 ‘운명’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일 여의도 자택 근처에서 최불암 ‘후원회장님’을 만났다. 이야기는 커피와 함께 어린이 사랑에서 시작됐지만 5년째 진행하는 KBS 2TV ‘한국인의 밥상’을 거쳐 고량주가 곁들여진 볶음짜장을 먹으며 그가 학창시절을 보낸 1950년대까지 굽이굽이 거슬러 올라갔다.

다음은 일문일답.

- 후원회장 30주년을 맞으셨다. 묵묵히 봉사를 해오셨다.

△어린이는 또 하나의 ‘나’로 보아야 한다. 묵묵히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위안과 사랑을 느낀다. 진정한 봉사는 비 맞고 있을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

지난 30년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만남이 있었기에 삶을 소중히 잘살게 됐다.

이 나이에 느껴보는 감회이자 수줍은 고백이다. (그는 이 답변을 손수 메모지에 적어서 왔다.)

- 그사이 국내 나눔의 문화가 많이 성장한 것 같은지?

△말해 뭣하나. 기업에 사회공헌팀이 생기고 개인들도 기부하고 후원하는 문화가 많이 퍼졌다. 예전에는 기부를 하면 돈이 투명하게 쓰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 재단도 아주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난 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우리처럼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이 앞에 나서서 나눔을 독려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집사람도 청각장애우들을 돕는 사랑의달팽이 회장을 맡고 있고 ‘전원일기’에서 호흡을 맞춘 김혜자도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수십년 활동하고 있다.

- 30년간 해외 여러 곳을 찾아 봉사하셨는데 지난 7월에도 케냐에 우물을 파주러 다녀오셨다.

△메르스로 온 나라가 한창 지쳐있을 때였다.

가기 전 예방접종을 수차례 맞는 것부터 너무 힘들었지만 이렇게 봉사하러 갈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했다.

사즉생(死卽生)이라고 생각하니 못할게 없었다. 현지에 가보니 처참한 게 상상이상이었다. 사람 몸의 물기가 70%라는데 거기 애들은 30%도 안되게 바짝 말라 있었다.

에너지가 없어서 눈을 뜨고 감는 동작조차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해야 했다. 그 아이들을 위해 우물을 파줬고 아이들이 거기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얼굴에 맞는 모습을 봤다.

죽을 때까지 그 이상의 감동은 없을 것 같다. 너무나 큰 행복 덩어리를 가져왔다.

바람이 있다면 북한 아이들을 돕는 것이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북한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여건만 되면 북한을 먼저 찾고 싶은데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배석한 재단 관계자는 “최 회장님이 북에는 아직 못갔지만 재단의 대북 지원 사업에 발벗고 나서는 등 늘 북한 아이들을 생각하신다”고 귀띔했다. 최불암의 아버지는 황해도 해주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