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사라져도 시는 남아… 오늘 쓴 시가 최초의 시”
“인류 사라져도 시는 남아… 오늘 쓴 시가 최초의 시”
  • 박재연 기자
  • 승인 2015.10.04 1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문학의 거목 고은 시인
 

시인 고은(82)은 25세이던 1958년 등단하고서 6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표작인 30권 규모 연작시 ‘만인보’를 비롯해 시집과 산문집 등 150여 권의 저서를 펴낸 한국문학의 거목이다.

그런 그가 한국 사회 존경받는 원로로도 불리는 것은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거대한 작품 세계 때문만은 아니다.

시인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12세, 일본어로 학교 수업을 받은 지 4년째 되던 해에 광복의 환호성을 함께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땐 17세였다.

전쟁의 참상을 두 눈으로 보고서 1952년 출가해 10년간 승려 ‘일초‘(一超)로 살았다. 그러던 중 시를 쓰게 된 고은은 1958년 시인 조지훈과 서정주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인은 폐허 속에서 다시 집 한 채씩 지어가며 일궈낸 한국의 경제성장기를 지켜본 데 이어 민주화 운동을 하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옥고까지 치른,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함께 걸어온 인물이다.

시인은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은 감회에 기쁨과 아픔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광복에 대한 감회는 거의 다 같을 겁니다.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은 기쁨이 70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이고, 또 우리가 빼앗겼던 모국어를 찾아 그 말로 70년을 살아온 감회가 있죠. 다만 이 70년 동안 온전한 우리의 역사를 진행시킨 것이 아니라 둘로 갈라져서 이웃나라보다도 더 멀리, 또는 멀리 있는 나라보다도 더 멀리, 그것뿐이 아니라 서로 증오가 확대된 아픔의 세월이기도 합니다.”

“다가올 70년에는 어둠과 아픔을 걷어내는 새로운 시대의 우리 조국이 동아시아에서 빛을 눈부시게 퍼뜨리면 좋겠다”고 한 시인은 새 시대의 첫걸음으로 통일을 강조했다.

한계가 보이지 않는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시를 어떤 이유에 의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와서 나에게 잉태되고 나는 그것을 낳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시론에 의해서, 또 ‘이런 것을 써야겠다’는 면밀한 나의 명제를 발생시켜서 시를 그 안에 구성시키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바이러스처럼 떠 있는 시를 받아들여서 시가 탄생합니다. 세계에 있는 모든 사물은 각자 다르게 자기를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런 시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나를 하나의 형식만을 지키는 시인이 아니라 여러 형식을 가진 시인으로, 어떤 불안한 가능성이 있는 체질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시가 몇 편이 되는지 전혀 모릅니다. 오늘 쓴 시가 최초의 시죠. 아주 짧은 시 한두 편 외에는 외우는 시도 거의 없습니다.”

시를 잘 읽지 않는 요즘 분위기에 대해서는 “인류가 없어져도 시는 남기 때문에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인간 안에 품은 고유의 리듬, 우주의 작동, 햇살을 반사하며 날아다니는 먼지조차 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이를 위한 조언을 구하는 말에는 “예술을 행여나 시장 행위로 생각하지 않겠나 하는 헛된 걱정이 든다”면서도 자세한 고언은 아꼈다. 부모건 자식이건 “모든 사람이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태초이고 마지막”이라는 그의 가치관에 따른 것이다.

“저는 스승이라는 말보다 친구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벗, 연대, 수평관계, 우정 같은 단어가 좋습니다. 강의할 때도 학생들에게 ‘여기에서 위대한 은사를 만날 생각 하지 말고, 위대한 친구 하나 꼭 만나라’라고 얘기하죠. 자기 정신으로 살아야지 왜 다른 사람의 정신을 이어받아요. 내가 아플 때 내 아픔을 대신할 수 있는 친구 하나 있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