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김정은 면담 불발… 북측 대접 소홀 지적도
이희호, 김정은 면담 불발… 북측 대접 소홀 지적도
  • 박재연 기자
  • 승인 2015.08.0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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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경색된 남북관계 반영…방북단에 6·15 주역 빠져"
당국자들 "北, 처음부터 이희호-김정은 면담 적극성 없었다"
▲ 3박 4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친 이희호 여사가 8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 환영객들로 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지난 8일 3박 4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기대를 모았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김 제1위원장이 이 여사와의 개별 면담 대신 친서로 방북에 감사를 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지만, 친서도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여사가 방북 기간 평양산원과 애육원, 묘향산 등을 방문하는 동안 맹경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주로 아태평화위 관계자들이 동행하면서 식사도 함께했다.

하지만 아태평화위 위원장 직책을 맡은 김양건 노동당 비서도 이 여사와 만나지 않아 전직 대통령 부인에 대한 북측의 대접이 소홀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여사는 지난 5일 김포공항에서 이스타항공 전세기를 이용해 서해 직항로로 평양으로 출발했다.

맹 부위원장의 영접을 받으며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한 이 여사는 방북 첫날 평양산원과 옥류아동병원을 차례로 방문했다.

5일 저녁 백화원초대소 영빈관에서 개최된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주최 환영 만찬에는 맹 부위원장 등 북측 인사 6명이 참석했다.

▲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한 이희호 여사가 6일 평양의 한 육아원을 방문해 어린이들을 안아주고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이 여사는 방북 이틀째인 6일에는 평양 소재 육아원과 애육원, 양로원을 방문한 뒤 묘향산으로 이동했다.

방문 사흘째인 전날에는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박람관과 보현사를 방문했다. 이 여사측이 전날 저녁 숙소인 묘향산호텔에서 주최한 만찬에도 맹 부위원장 등 북측 인사 6명이 참석했다

이 여사는 이날 아침 숙소인 묘향산호텔에서 순안국제공항으로 이동, 맹 부위원장의 배웅을 받으며 전세기편으로 오전 11시에 평양을 출발해 정오께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이 여사는 김포공항에 도착한 직후 귀빈주차장 출입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는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방북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며 "이번 방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배려로 가능했으며,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편안하고 뜻있는 여정 마쳤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평양에서 애육원, 육아원 등을 방문하고 해맑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으면서 다음 세대에 분단의 아픔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 생각했다"며 "(그것을) 더욱 깊이 새기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 여사는 "아무쪼록 국민 여러분도 뜻을 모으셔서 6·15가 선포한 화해와 협력, 사랑에 선언과 평화와 하나됨의 역사를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이희호 여사와 함께 지난 5일부터 3박 4일간 북한을 방문한 사진작가 홍성규씨가 버스에서 촬영한 평양거리 사진을 9일 공개했다.ⓒ연합뉴스
정치권은 이 여사와 김 제1위원장간의 면담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9일 일제히 유감의 뜻을 밝혔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당초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직접 초청으로 이뤄진 방북인데 김 위원장과의 어떠한 면담도 이뤄지지 않은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북한 지도부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고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켜보겠다고 한다면 핵개발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남북간 그리고 국제사회 대화테이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 역시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 여사의 방북에 대해 북측의 초청과 환대에 감사한다"면서도 "여러 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청자인 김정은 위원장과의 상봉 면담이 없었던 것은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김 제1위원장과의 면담 불발은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에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또 18명으로 구성된 이번 방북단 구성과 성격에 대해 북한이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방북단 구성에서 6·15공동선언 주역들이 빠졌고, 반면 북한이 거부해온 '인도주의적 지원' 성격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도 "6·15공동선언의 계승·발전 측면에서 충분히 북측 고위급이나 김 제1위원장을 만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남북관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 방북단에 많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방북을 '개인 자격' 차원에 한정시키며 별다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정부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장 선임연구원은 "당국 차원에서 메시지를 주고 무게를 실어주었으면 (결과가) 다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고, 양 교수는 "정부가 이희호 여사의 방북을 다소 소극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편, 통일부 당국자들은 이같은 비판에 대해 "북측이 처음부터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통일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날 언론을 통해 "국내의 기대와 달리 북측은 이 여사의 방북을 약속했었기 때문에 이행했을 뿐, 애초 이 여사와 김 제1위원장이 면담을 가질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 준비 단계부터 북측은 적극성이 없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이 여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것처럼 이야기하면 북측도 부담되고, 성사되지 않았을 때 후유증이 크기에 개인 자격 방문이라고 말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는 "김대중평화센터측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김 제1위원장과의 면담 여부만으로 이 여사의 방북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방북의 의미를 오히려 퇴색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아일보] 박재연 기자 jypark@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