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경제학의 대부’ 김수행 교수 별세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부’ 김수행 교수 별세
  • 전민준 기자
  • 승인 2015.08.0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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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서 경제학자로 변신… ‘자본론’ 첫 완역 위업
 

한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김 교수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인물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로 꼽힌다.

3일 성공회대에 따르면 김 교수의 지인들은 김 교수가 앞서 지난달 24일 아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갔고, 같은 달 31일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2005년 세상을 떠난 정운영 경기대 경제학부 부교수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1세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이끈 이론가로 꼽힌다.

1942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대구에서 자란 그는 1961년 서울대 상대(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원을 거쳐 1969년 외환은행에 들어간 그는 성장기부터 가난이라는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대학 시절에 일본어로 된 사회과학개론, 경제사, 경제사상사 등을 섭렵하면서 ‘경제학 비판’에 눈을 떴다.

1972∼1975년 외환은행 런던지점에서 근무할 때 경험한 영국의 선진 자본주의와 1974∼1975년 찾아온 세계적인 공황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런던 근무를 마친 뒤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기꺼이 사표를 낸 그는 런던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 1982년 한신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박영호, 정운영 교수 등과 함께 김상곤·이영훈·윤소영·강남훈 박사를 영입해 경제과학연구소를 설립, 국내 최초로 제도권에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 거점을 만들었다.

이어 1989년 “진보적인 학문을 배우고 싶다”는 서울대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의 지지로 기존 경제학부 교수들의 반대를 뚫고 서울대 교수에 임용됐다.

2008년 퇴임할 때까지 그는 서울대의 유일한 마르크스주의 전공 경제학자였다.

그 자신이 가장 큰 업적으로 꼽는 일은 한국 최초의 ‘자본론’ 완역이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마르크스 ‘이론’을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데 따른 산물이었다.

이 일을 두고 그는 “1972∼1982년 한국의 정세를 잘 몰라 현실문제에 개입할 수 없었다”며 학창시절 정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다져 놓은 건강과 ‘곰’처럼 미련한 성격 덕분에 하루 10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1989년 2월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그는 그해에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한때 명성을 누리기도 한 ‘자본론’ 완역본을 발간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그 당시 아직도 ‘자본론’이 금서목록에서 해제되지 않았다”며 “서울대 교수가 ‘잡아가려면 잡아가라!’며 번역·출판해 버리니 경찰과 검찰도 어찌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이후로도 고인은 다양한 저서를 펴내며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에 깊이를 더하고 일반인에게도 쉽게 다가가려 노력했다.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2008년 그의 정년 퇴임 이후 서울대에서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학맥이 끊기는 것 아니냐’고 후임 선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국사회경제학회는 “고인은 굴곡 많은 한국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으로 험난한 자리를 지켜 왔다”며 “정년퇴직 후에도 왕성한 학문적 활동과 함께 수많은 저서를 출간해 왔기에 더욱 아쉽다”고 애도했다.

고인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정년퇴임을 기념해 2007년 ‘사회경제평론’에 기고한 회고록인 ‘나의 삶, 나의 학문’에 “앞으로 마르크스주의가 더욱 발전해 이 세상의 소금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