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면 쉬고 배고플 때 먹을 수 있어 행복”
“힘들면 쉬고 배고플 때 먹을 수 있어 행복”
  • 고아라 기자
  • 승인 2015.07.27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병화씨, 호텔 30년 요리사 생활 접고 귀촌한 ‘셰프 농부’
▲ 유명 호텔의 최고 요리사를 지낸 전병화씨(51)는 지난해 여름 30년의 요리사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충북 단양군 어상천면으로 귀촌해 농사를 짓고 있다. 전 씨가 오랜만에 요리사 복장을 꺼내 입고 자신의 집 앞에 섰다.

“환상 갖고 시골 오면 실패”… 농사 지으며 ‘농가 맛집’ 준비

“힘들면 쉬고 배고플 때 먹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제가 농사일을 얼마나 알겠어요? 주로 허드렛일 담당이죠” 지난해 여름 충북 단양군 어상천면 대전리로 귀촌한 전직 셰프(Chef) 전병화씨(51)는 농사에 대해 이렇게 운을 뗐다.

남부러울 것 없을 정도로 잘 나가던 그였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경주호텔학교(KNTC)를 졸업하고 1985년 서울 힐튼호텔에 입사했다.

햇병아리 요리사 시절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같은 굵직굵직한 행사를 수 없이 치러냈고, 메인 주방과 연회 주방, 이태리음식 파트를 두루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1990년 경주힐튼으로 옮겨 이태리와 프랑스 음식을 책임지는 ‘셰프 데 파트’ 자리에 올랐다.

2003년 다시 제주 라마다호텔에 스카웃돼 ‘셰프의 꽃’이라는 ‘이그제큐티브 셰프’(executive chef)를 맡았다. 자신의 주 전공인 양식뿐 아니라 한식과 중식, 일식에 이르기까지 조리부 전체를 총괄하는 책임자가 된 것이다.

2010년부터는 경주 조선호텔에서 직접 양식당과 커피숍을 운영하다 지난해 6월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두메산골’ 단양으로 내려왔다.

7남매 가운데 뜻이 맞는 누나 2명네 가족도 함께 내려왔다. 세 가족이 한 곳에 집을 짓고 옹기종기 모여산다.

요즘 대세라는 ‘셰프’의 귀촌, 귀농 이유는 뭘까.

“많은 도시인의 로망이 전원생활 아닙니까. 아무리 잘 나가는 요리사도 직장인이잖아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는 풀내음, 사람 냄새 나는 시골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망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다.

“성급하게 귀농이나 귀촌을 했다가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글쎄요, 저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힘들면 쉬고, 배 고프면 밥 먹고, 졸릴 때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합니다.”

전 씨는 시골에 내려온 직후부터 지역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왔다.

인근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요리학 강의를 하기도 했고, 틈나는 대로 실력 발휘를 해 동네 어르신들에게 음식도 대접했다.

요즘은 뒷마당에 토종닭을 키우고 텃밭에 무, 배추, 감자를 비롯해 각종 채소를 기른다. 장아찌 같은 저장식품을 만들기 위해 오가피, 두릅 같은 작물도 재배한다.

2년쯤 뒤에는 직집 키운 신선한 농산물을 주 재료로 하는 ‘농가 맛집’을 차릴 생각이다.

“제가 가진 재주를 살려 많은 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고 노후 준비도 할 생각입니다. 좋은 자연 속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좋은 분들에게 대접하는 게 새로운 목표운 목표가 됐습니다.”

여유로운 시골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 씨처럼 남다른 기술이나 할 일이 확실히 없으면 귀촌, 귀농에서 성공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장밋빛 환상만 가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계 수단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의 조화, 융합이 있어야만 농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전 씨는 강조한다.

그는 “치밀한 계획과 사전 분석, 조사가 있어야 실패 확률이 적다”며 “신기루를 좇아 시골로 내려왔다가 곶감 빼먹듯 가진 돈이 모두 떨어지면 다시 도시로 떠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