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중학생 된 ‘수제화 명인’ 우종필씨
늦깎이 중학생 된 ‘수제화 명인’ 우종필씨
  • 김상현 기자
  • 승인 2015.07.15 1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까지 마치고 수제화 기술 체계적으로 전수”
▲ 대구내일학교 중학과정에 다니는 수제화 명인 우종필씨가 교실에서 책을 펼쳐보이고 있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해 수제화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수하고 싶어요.”

대구시 중구 향촌동 수제화 거리에서 일하는 수제화 명인 우종필씨(52)는 구두 만들랴 늦깎이 중학생 생활하랴 여념이 없다.

그는 한 달 내내 휴일도 없이 구두 매장을 운영하면서 월·수·금요일에는 성인 문해학교인 대구내일학교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 꼬박꼬박 수업에 참가한다. 1년 과정이 끝나는 9월 그는 중학교 학력을 인정받고 졸업한다.

우 씨는 향촌동 수제화 거리 78개 업체 중 46개 업체가 가입한 대구수제화협회 회장에다 5개 수제화업체가 공동 운영하는 마을기업 ‘편아지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올해 대한민국 수제화 명인, 대한민국 신지식인 등에 선정될 정도로 남부러울 것 없던 그에게는 늘 배움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다.

가업을 이어받아 37년간 수제화만 만들어온 우 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운동선수 생활 중 다쳐 등교하지 않고 집에서 쉬었다.

쉬는 동안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에 흥미를 느낀 그는 그 길로 학업을 접고 구두 만들기에 매달렸다.

우 씨는 “60∼70년대 대구 수제화는 전국 최고였는데 남자 구두는 대구, 여자 구두는 서울, 운동화는 부산이 유명했다”며 “수제화 기술자로 일주일을 일하면 직장인 한 달 월급을 벌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기성품이 점차 시장을 잠식하면서 수제화는 본래의 지위를 잃었고, 대구역을 중심으로 자리잡았던 가게들은 인근 향촌동으로 밀려났다.

그저 발이 불편한 사람이 찾거나 중장년층이 애용하는 구두가 돼 버린 수제화가 되살아난 것은 2013년 향촌동 수제화 거리에 마을기업이 들어서면서부터다.

대구 중구와 대구수제화협회가 공동으로 수제화 브랜드를 개발하고 공동 판매장을 운영하기로 한 계획이 안전행정부 마을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돼 사업비와 경영 컨설팅을 지원받았다. 공동 판매장 운영으로 유통 차액을 줄이자 저렴하게 구두를 맞춰 신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났고, 전에 없이 주문량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고객이 구두를 주문하면 일주일 안에 신을 수 있었지만, 주문량이 늘면서 한 달 이상 밀리는 일까지 생겨났다.

수제화 거리에 활기가 돌자 업체마다 경쟁적으로 디자인 개발에 눈을 돌리는 등 품질과 상품성을 높이느라 분주하다.

지난해부터는 수제화 거리에서 ‘빨간구두 이야기’ 축제를 열기 시작했다. 우 씨 아들도 가업을 이어받으려고 3대째 수제화를 만들고 있다.

우 씨는 “지금은 LA에 사는 교포가 수제화를 주문할 정도로 여전히 수제화를 찾거나 수제화만 고집하는 분들이 있다”며 뿌듯해했다.

그는 “중학교 과정이 끝나면 내년에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중에 대학교까지 마쳐 수제화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수하는 일을 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