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구제역·AI와 어느 한 수의사 일기
[독자투고] 구제역·AI와 어느 한 수의사 일기
  • 신아일보
  • 승인 2015.06.1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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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성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 주무관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 시 어린 시절 소를 기르던 추억을 회상하며 새로이 신설되고 전망 있는 수의학과를 선택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수의학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단지 신설과라는 매력에 지원했다.

그 때만 해도 대학에 입학하면 낭만이 있고 화려할 것 같았던 시절에 유독 우리 수의학과만 타 과에 비해 학점이 많았고 고등학생에 버금가는 수업시간과 실습시간 등으로 대학4년 동안 가축전염병학, 해부학 등 수의학 전공공부에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대학 졸업 후 잠시 경기도 이천에 있는 모 종돈장에 취직해서 수의사로서의 필드경험을 바탕으로 1991년 뜻이 있어 수의직 공무원으로 입사하여 선배, 동료, 후배 수의사와 즐거운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내가 연구소에 발령받을 그 당시만 해도 축산위생연구소의 역할이 종돈장 위생관리, 우 결핵 및 브루셀라 검진 등 질병 검사, 도축 검사 등 일상 업무로 비상근무가 없어 업무 스트레스는 거의 없는 평온한 직장생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다자국간 무역이 활발해지고 농축산물의 수입개방이 확대됨에 따라 해외질병이 유입되면서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커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0년 파주 젖소에서 구제역이 최초 발생한 이후 그야말로 수의전염병학 교과서 후미진 곳에 몇 줄로 쓰여 있던 구제역, AI 등 악성가축전염병이 발생되기 시작했다.

축산현장에서는 밀집사육 등 생산성 위주의 경영으로 가축질병이 급속히 확산되고 광범위하게 발생함으로 인해 피해는 더욱 확산됐다.

이런 여건에서도 우리 연구소 수의사는 질병 확산을 최대한 차단하고 조기에 종식시키기 위해 비상근무, 야근 등 적극적인 방역활동 수행으로 악성 구제역, AI질병을 조기 종식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2010년에 발생된 구제역, AI 발생에는 동물보호협회, 환경운동 등 사회적인 변화와 축산농가의 방역의식 저하, 수의조직의 감소 등 여러 가지 상황이 가축질병 청정화에 어려움이 따랐다.

결국 구제역은 백신정책으로 전환하게 됐다.

구제역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4월까지 발생된 이후 전국적으로 종식됐으나 안심할 수 없는 상태이다.

AI의 경우 이미 오염된 발생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종식의 희망적인 전망이 감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간 구제역, AI 발생으로 축산농가 살처분 등 직접피해만 5조원 이상 많은 경제적 피해에도 살아남은 이유로는 2000년 이전 축산 전성기 때 축산기반을 토대로 버텨왔고, 나 또한 한 수의사로서 역시 젊은 패기로 각종 가축질병의 청정화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축산농가와 어느 한 젊은 수의사도 많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패기도 없고 자신감도 상실하고 있다.

이런 위태한 대한민국의 축산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밀집사육 방지 및 축사시설 현대화와 더불어 가축방역조직의 확대로 철저한 사전 검진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하루빨리 대한민국이 선진국형 축산으로 발전해야 축산업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모든 축산정책의 집중화가 필요할 때인 것 같다.

그간 양적 성장에 치중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축산의 질적 향상에 노력해서 모든 역량을 가축이 질병에서 해방되는 쾌적한 환경과 질병관리가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화려했던 수의사의 일기가 다시 한 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오늘도 어느 한 수의사는 미소를 머금으며 찬란한 붉은 노을을 바라본다. 

/차현성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 주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