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새 복병, '日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한일관계 새 복병, '日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 온라인뉴스팀
  • 승인 2015.05.05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제징용 시설 7곳 포함…치열한 물밑 외교전 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지난달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계기로 최고조에 달했던 한일 간 과거사 갈등이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문제라는 새로운 복병을 만났다.

일본이 유네스코에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했고, 우리 정부는 이중 '지옥도'라는 별칭이 붙은 하시마(端島) 탄광을 비롯해 7곳에 대해 우리 국민의 강제징용 한이 서린 시설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23개 시설에 대해 '등재 권고' 결정을 내림으로써 과거사 갈등과 함께 이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했다. 우리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물론 ICOMOS는 단순히 기술적 측면만 평가하는 민간 자문기구에 불과하고 최종 결정기구인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법적으로 구속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ICOMOS가 등재를 권고한 것 가운데 세계유산위원회가 등재불가 판정을 내린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최종 결정은 오는 6월28일~7월8일 독일 본에서 열리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이뤄진다.

이에 따라 세계유산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한일간에 치열한 물밑 외교전이 예상된다.

우리 정부로서는 오는 6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과 8월 종전 70주년 '아베 담화'를 앞두고 아베 총리의 올바른 역사인식 표명을 통한 한일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과거사를 둘러싼 또 다른 악재에 직면한 것이다.

7개 시설(나가사키 조선소 제3 드라이독·대형크레인·목형장, 다카시마 탄광, 하시마 탄광, 미이케 탄광 및 미이케 항, 야하타 제철소)에는 무려 5만7천900명의 한국인이 강제동원됐고 그중 94명이 강제동원 중에 사망했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의 감정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는 사안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관련 시설의 등재 기간을 '1850년부터 1910년'으로 신청, 일제의 식민지배와 강제징용 논란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를 동원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일본 정부가 등재 준비를 위한 전문가 회의를 설치한 2012년 7월부터 일본 측에 '등재 추진 재고'를 강력히 요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지난 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우리 정부의 기본입장은 강제노동이 자행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채 산업혁명 시설로만 미화시켜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반대한다는 것"이라면서 "인류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보호하는 세계유산협약의 기본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다양한 채널과 여러 수준에서 등재 추진 재고를 강하게 촉구했고, ICOMOS와 유네스코에 대해 우리 입장서를 전달하고 주요 인사 면담 등의 노력을 전개한바 있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앞으로 세계유산 위원국들에 대해 우리 입장을 전방위적으로 강하게 설득해 나가는 한편, 모든 가능한 방안을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1차 관문'인 ICOMOS의 '등재 권고' 이후 세계유산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치열한 한일간 물밑 외교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해 총 21개국의 위원국으로 구성돼 있으며, 등재 결정은 위원국간 컨센서스를 원칙으로 하되 컨센서스가 형성되지 않으면 공개 또는 비공개 표결을 실시한다.

정부 당국자가 "등재냐 아니냐는 이분법적 승부는 아닌 것으로 본다", "우리의 이런 정당한 우려를 어떻게 반영시키느냐 하는 문제"라고 밝힌 바 있어 우리 정부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차선책을 강구 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5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계유산 등재 보고서에서 어떤 형식이든 조선인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문구를 넣는 것을 차선책의 하나로 거론하고 있다.

또는 세계유산 등재 결정시 그 유산 제목에 시기를 '1850~1910'와 같은 방식으로 특정해 강제동원의 역사를 이면에서라도 살려 놓는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신아일보] 온라인뉴스팀 web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