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관하는 도서관 기능 더 이상 의미 없어”
“책 보관하는 도서관 기능 더 이상 의미 없어”
  • 문경림 기자
  • 승인 2015.03.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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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 관장 “책소개 경연 등 차별화해야”

책읽는 문화가 점점 퇴조하는 현실과 이를 되살려야 한다는 당위의 부조화는 이 시대가 처한 주요한 문화적 딜레마다.

정부와 출판업계, 도서관 등 유관 기관들이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려는 다양한 모색과 변화에 나서고 있으나 여전히 뚜렷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책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끔 하는 공공도서관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성과가 있어 눈길을 끈다.

공상과학(SF)과 판타지 소설 동호회가 힘을 합쳐 지난 2009년 3월 개관한 뒤 7년째 고유의 운영방식을 유지해온 전문도서관 ‘SF & 판타지 도서관’이 바로 그것.

전홍식 관장(41)은 10일 인터뷰에서 “데이터가 범람하는 시대에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의 기능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도서관은 개인들의 책읽는 습관을 이끌고, 함께 생각하고 나누는 문화를 창달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10여년간 ‘네오위즈’ 등 유수의 게임업체를 거친 게임전문가이기도 한 전 관장은 흔히 얘기하는 전형적 ‘오덕’(매니아를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에서 따온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게임 관련 수업을 하는 시간강사로 일하지만, 도서관 운영에만 1억원 넘는 사비를 털어넣었다.

전 관장은 “무언가에 깊이 빠질 수 있는 사람들은 희망을 갖게 되고 방법을 깨닫게 되면, 현실 속에서 자기를 찾을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단언한다.

SF·판타지물을 기피하는 부모들의 편견엔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한다. 도서관 서가엔 그가 내놓은 추천 도서 목록과 가이드가 비치돼 있다.

전 관장은 지난 6년간의 도서관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도서관이 되살아날 수 있는 길은 ‘전문적 영역’과 ‘스토리’ 확보에 있다고 단언한다.

도서관은 지난해 두 차례 실시한 비블리오 배틀 행사를 올해 8월에도 실시하는 등 정기화했다. 일본에서 아사히신문이 주최해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행사다. 지난해 두 번의 행사에서 각각 1위를 한 작품은 조너선 페터봄의 만화 ‘트리니티’(서해문집)와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시공사)이다.

“백화점식 나열과 관료화한 운영으로는 더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습니다. 작은 도서관에 천편일률적으로 자기계발서들을 비치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죠. 비블리오 배틀 일본 행사의 모토가 ‘사람을 통해 책을 만난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난다’였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이런 취지의 행사들이 이곳저곳에서 여러 방식으로 더 많이 확산될 때 책읽는 문화 회복도 가능할 겁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은 1998년 문을 연 SF·판타지물 동호회 ‘조이에스에프 클럽’ 회원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동호회는 현재에도 하루 5000명이 접속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애초 사당동에서 개관했으나 2012년 연희동으로 옮겼으며, 재이전을 구상하고 있다.

전 관장은 세 차례 펴내고 중단된 SF 판타지 무크지 ‘미래경’을 다시 발간해 활성화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다. 이를 통해 SF나 판타지 작가들이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