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눈으로 역사를 보고싶었다”
“과학자의 눈으로 역사를 보고싶었다”
  • 김가애 기자
  • 승인 2015.02.2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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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졸업한 이영남 충북대 명예교수
 

“과학과 인문학이 조화를 이뤄야 사회나 국가가 발전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동안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덜한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지난 24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졸업식에서는 동기들로부터 어머니나 선생님, 교수님 등으로 불리는 한 졸업생이 학사모를 썼다.

그 주인공은 일흔의 나이에 졸업한 이영남 씨. 지난 1987년부터 2011년까지 충북대 교수를 지낸 과학자라는 이력도 이력이지만, 몸담았던 분야가 역사와는 전혀 다른 미생물학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두 번째 학사모’를 쓴 이씨는 25일 “이런 기회를 접하기가 쉽지 않은데 지난 3년간 역사를 공부할 수 있어서 고맙고 행복했다”며 감격에 찬 졸업 소감을 밝혔다.

그는 지난 1964년 서울대 약학과에 입학한 이후 졸업과 동시에 약사 자격증을 땄지만 순수 과학에 이끌려 미국에서 유학해 미생물학 석·박사 학위를 얻었다.

이후 연세대 의대, 영국 국립의학연구소를 거쳐 24년간 충북대 미생물학과 강단에 섰다.

이씨는 정년 퇴임 이듬해인 지난 2012년 3월 이 학교 국사학과에 편입해 48년 만의 두 번째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인생을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며 “우리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과학에 매진한 것에 비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역사를 공부하면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지혜가 많을 것 같았다”고 진학 계기를 밝혔다.

1960년대와 2010년대 캠퍼스 생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났다. 손으로 한 자 한 자 적던 과제물은 프레젠테이션 파일이 됐고, 도서관을 뒤져야 했던 자료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안에 모두 들어갔다.

“40년 전에는 시위가 많아서 제대로 학기를 마치기도 어려웠어요. 나이 들어 학교에 다시 오니 확실히 도서관이나 스마트 기기 등 교육 환경이 많이 개선됐어요.”

그러나 그는 “20대 학생들이 공부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며 “취직을 위해 전공과 무관하게 토익 같은 이력서용 ‘스펙’을 쌓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미생물학과 역사라는 전혀 다른 두 분야에 천착하며 많은 차이를 느꼈을 법하지만, 이씨는 “두 학문이 거리가 먼 것 같아도 깊게 들어가면 결국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고 생각한다”며 “방법론은 다르겠지만, 진리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는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역사 공부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씨는 “과학자의 눈으로 역사를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리라는 기대감이 있다”며 “우리나라의 과학사를 연구해 보고 싶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