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방치… 진정한 의미의 국가 부재”
“폭력방치… 진정한 의미의 국가 부재”
  • 문경림 기자
  • 승인 2015.02.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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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해방일기’ 전 10권 완간한 역사학자 김기협씨
 

“‘해방일기’를 집필한 3년간 건강에 별문제가 없었고 작업하기에도 좋은 조건이었어요.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해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해방정국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성공한 듯하지만 세밀한 요소들을 독자들이 알아보기 좋게 분석하는 일까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해방공간을 조명한 역사학자 김기협씨(64)의 ‘해방일기’가 전 10권으로 완간됐다.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 연재분을 모은 책으로, 해방을 목전에 둔 1945년 8월1일부터 남한 단독정부 수립

즈음인 1948년 8월14일까지 역사를 일기 형식으로 정리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치면 1만8120장에 이른다.

2011년 4월 1권 출간 이후 4년 만에 전권 출간을 매듭지은 김씨는 23일 반세기 이상을 사이에 둔 해방공간과 오늘날의 공통점으로 ‘국가의 부재’를 꼽았다.

“‘해방일기’의 주된 주제는 광복을 맞고 나서도 진정한 의미의 국가를 회복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억지로 세운 국가였으니 폭력에 의지해야만 했죠. 그 폭력의 성격은 경찰국가와 군사독재를 거치는 동안에는 ‘주먹’이었고요. 그런데 오늘날에도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이들이 진정한 의미의 국가가 부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김씨는 “주먹의 폭력이 심각했던 시절에는 그 뒤에 ‘돈’의 폭력이 숨어 있다가 1987년 이후 표면으로 떠오른 것”이라며 “주먹의 폭력이든 돈의 폭력이든 폭력이 방치된 상태에서 국가의 부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방일기’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명료한 편이다. 해방정국은 민족주의·민주주의·사회주의를 배합하려 한 중도파를 억압하고자 극우와 극좌가 적대적으로 공생한 시공간이었고 분단과 전쟁의 1차적 책임은 외세의 작용에 있었다는 인식이다.

‘해방일기’는 엄격한 실증에 근거하는 일반 역사학자들의 저술 경향과 달리 역사에 대한 과감한 해석과 논평을 가미해 현장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쓰인 점이 특징이다.

사실 그는 애초 물리학도였다가 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서 중국사를 전공한, 한국 현대사 집필자로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저도 한국 현대사를 전공하시는 분들한테서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그분들 기준으로는 제게 좀 어설픈 점이 있어도 뭔가 다른 각도에서 작업해낸 점을 높이 평가해주셔서 감사하죠. 저는 사이비(似而非, 비슷하지만 아닌) 연구자가 되지 않으려고 ‘비이사’(非而似, 아니지만 비슷한)가 되고자 노력합니다. 잘못된 곳으로 빠지지 않도록 제 한계를 인정하고 조심스럽게 작업하려 하죠.”

그는 향후 집필 계획에 대해 “나이가 있으니 ‘해방일기’ 같은 미시적 작업을 더 하긴 어렵고 좀 넓은 관점에서 역사를 살펴볼 계획”이라며 “지금의 세계를 ‘자본주의 이후’라는 명제로 살펴보는 작업과 더불어 서구중심적 관점을 탈피한 방식의 중국사 서술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