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 돕고 싶어”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 돕고 싶어”
  • 신혜영 기자
  • 승인 2015.02.1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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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사랑 결실’ 북한 다문화가족 1호 리영희씨
▲ ‘30년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 리영희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조선 남성과 결혼하는 베트남 여성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었습니다. 결혼 상대와 전혀 언어 소통이 되지 않아 정말 안타까웠어요.”

30여 년의 기다림 끝에 베트남 남성과 결혼한 ‘감동 러브 스토리’주인공인 북한 국적의 리영희씨(68)가 최근 한국 남성과 결혼하는 베트남 신부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변신했다.

북한의 다문화 가족 1호인 리 씨는 최근 매일 베트남 북부 하이즈엉 교육시설에서 약 60명에 이르는 현지 결혼 이주 여성들의 한국어 학습을 돕고 있다.

하루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 신부들에게 한국어 듣기와 말하기 등을 지도하는 리 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다”며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내가 가르친 베트남 신부들이 한국에 가서 부자는 아니더라도 별다른 사고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주는 게 가장 큰 소원”이라고 힘줘 말했다.

리 씨는 친정을 생각하는 베트남 신부들의 극진한 효성을 이해하지만, 간혹 친정을 도우려고 가정을 떠나 일하는 여성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한 리 씨의 베트남 신부 사랑은 남다르다.

그녀는 앞서 삼성전자가 후원하는 베트남 단체에서 결혼 이주여성들의 상담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시집 간 베트남 여성들이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하면 직접 국제전화를 걸어 오해를 풀어주었다며 그때가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남편 팜 옥 까잉(67)도 집이 있는 하노이에서 70㎞가 넘는 먼 거리임에도 이따끔 리 씨가 일하는 교육시설에 들러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부부애를 과시한다.

까잉 씨가 리 씨와 운명의 만남을 가진 것은 23세이던 지난 1971년 북한 함흥화학공대에서 유학하던 때였다. 첫 눈에 사랑에 빠진 그는 1년 6개월 동안 리 씨와 만나다 혼자 귀국해야 했다.

공산당 당원과 공무원에 대해서는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지하는 베트남의 법령 때문이었다.

베트남의 공산 혁명가이자 정부 차관급 인사 자제였던 까잉 씨는 이후 탄탄대로의 출세길을 접고 리 씨를 선택했다. 하지만, 지난 1992년 마지막 편지를 끝으로 리 씨의 소식은 끊겼다.

다급해진 까잉 씨는 2001년 베트남 최고 지도부에게 자신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는 편지를 써서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의 만남이 극적으로 성사된 것은 베트남 사회에서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던 아버지의 든든한 배경 때문이었다.

둘은 이듬해 북한 당국이 북한 국적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국제결혼을 승인하면서 꿈에 그리던 가정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