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 갈등 따뜻한 눈길로 녹여야”
“우리사회 갈등 따뜻한 눈길로 녹여야”
  • 김가애 기자
  • 승인 2015.01.26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달 정년퇴임하는 김문조 고려대 교수
 

“한동안 우리 사회의 갈등 요소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것은 양극화였지만 요즘에는 ‘갑을논쟁’입니다. 최근엔 다소 과도하게 드러나는 이런 양상은 한국사회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죠.”

내달 정년퇴임 하는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증오·분노 내재한 우리사회의 갈등을 관리하는 해법으로 ‘따뜻한 눈길’을 제시했다.

김교수는 한국이론사회학회와 사회학회 회장을 지내는 등 이론사회학과 문화사회학에 정통하다는 학계의 평판을 듣는다.

그는 애초 서울대 화학과로 입학했지만, 학부 졸업 후 진로를 사회학으로 틀었고 지난 1982년부터 33년간 고려대 강단을 지켜왔다.

지난 23일 퇴임을 앞두고 연구실에 가득 찬 책과 자료를 정리하느라 여념 없던 김 교수에게서 한국사회의 여러 갈등 양상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들었다.

김 교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분노가 내재하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으로 ‘특권층에 대한 증오’를 짚고 최근 ‘땅콩회항’ 사건을 그 예로 들었다.

김 교수는 “잘잘못을 법리적으로 가리기보다 재벌 딸이 망신당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려는 보상심리가 팽배했다”며 “그동안 특권층에게 받은 굴욕을 이번 사건을 통해 해소해보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일촉즉발’, ‘분기탱천’으로 표현되는 증오와 분노가 대단히 많이 내재해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갈등관리의 관건”이라며 “서로 존중하는 ‘따뜻한 눈길’이 해답”이라고 제언했다.

또 “평등의식 확산과 미디어 발달로 보통 사람(凡夫)들도 제 목소리를 내지만 실제로는 빈부나 권력 차가 분명히 존재한다”며 “이 괴리가 갈등으로 촉발하지 않으려면 ‘당당한 가난뱅이’, ‘소신 있는 하급자’의 활약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작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종교를 초월해 국민이 열광했던 현상을 거론하며 “교황의 삶이 상징하는 존중과 배려의 가치를 그만큼 목말라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에게 큰 아픔을 주었던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부정부패와 외화내빈적인 사고, 관료의 무사안일주의, 배금주의, 진보·보수갈등 등 한국 사회의 모든 병폐와 못난 부분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고 평했다.

그는 세월호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에 대해 ‘지겹다’고 보는 일각의 여론에 대해선 “진보·보수를 떠나 잘못됐다”고 단언했다.

그는 “비극 복기는 괴롭지만, 그 이면에 있는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들을 자꾸 기억하고 되물어야 한다”며 “정치권은 국민이 세월호 문제를 지겨워하지 않도록 적절한 전략을 구사하며 개선점을 찾아가는 ‘기억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또, 신구세대 갈등에 대해선 “우리 사회는 성장 가도를 달리던 팽창기를 지나 이미 수축기에 접어들었다”며 “팽창기 신화가 계속될 거라 믿는 기성세대들은 취업난, 불황,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을 바로 보고 이해하라”고 당부했다.

“30여 년 동안 제자들과 호흡하며 서로에게 따뜻한 눈길과 마음결을 키워줄 수 있어 행운이었습니다. 저는 퇴임하지만, 오히려 학문에 완전몰입하는 기회로 삼아 학자인생 2막을 열 거예요.” 은발의 노교수는 이렇게 교정을 떠나는 시원섭섭한 소회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