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작가 정태규 눈으로 쓰다
루게릭병 작가 정태규 눈으로 쓰다
  • 오규정 기자
  • 승인 2015.01.1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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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창작집 ‘편지’ 펴내
 

“나는 이미 말하는 능력을 잃고 있었다. 구술할 형편도 못 되었다. 안구 마우스는 자주 고장을 일으키고 ….”

루게릭병을 앓는 부산의 소설가 정태규(57) 씨가 구술과 눈으로 써내려간 새 창작집 ‘편지’(산지니)를 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책의 서문 ‘작가의 말’에서 그는 “말하는 능력을 거의 잃어 구술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며 마음먹은 대로 쓰지 못하는 아쉬움을 털어 놓았다.

루게릭병과 2년 넘게 사투를 벌이는 그는 구술과 안구 마우스에 의존해 ‘편지’를 출간했다.

‘편지’에는 단편소설 8편과 콩트, 스토리텔링 등을 합쳐 14편의 작품을 실었다.

루게릭병으로 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말하는 능력을 잃어 눈으로 최근 창작집을 출간한 정태규 작가.

이 작품들 대부분은 작가가 아프기 전에 큰 줄기를 잡아 놓은 것이지만 ‘비원(秘苑)’은 말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던 지난해 여름에 집필한 것이다.

그의 아내 백경옥 씨는 지난 15일 “비원 작품을 쓸 때는 구술에 의존해 겨우 하루 원고지 6∼7장밖에 쓰지 못할 정도로 힘겹게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백씨는 “상태가 악화해 요즘은 누워서 지낼 때가 많고 이젠 구술도 힘들다. 다행히 미국에서 수리한 안구 마우스의 성능이 좋아져 카톡으로 소통하며 다음 책 출간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지’ 수록작 중 ‘비원(秘苑)’은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남녀가 우연히 서울 창덕궁의 신비한 정원인 비원에서 만난 장면을 그려 작가 자신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정 작가는 “이 소설집으로 지금까지 써온 글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루게릭병이 나에게 계속적인 집필을 허락한다면 새로운 단계의 글쓰기에 도전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 작가는 2012년 겨울 루게릭병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