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녀 살해 가장 '실직·재취업·주식투자 실패'
세모녀 살해 가장 '실직·재취업·주식투자 실패'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5.01.0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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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 가서 죗값 치르겠다"… 시대의 자화상
▲ 6일 오후 경북 문경 농암면에서 경찰에 붙잡힌 '서초 세모녀 살해 사건' 용의자 강모씨가 서울 서초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연합뉴스

서초동 세모녀 살해사건은 실직 후 마지막 보루로 삼았던 주식투자마저 실패한 40대 가장이 부인과 두 딸을 숨지게 한 비극으로 끝났다.

6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강모씨(48)는 6일 새벽 3시~4시30분께 서초구 서초동 소재 아파트 거주지에서 자고 있던 자신의 아내(43)와 큰딸(13), 작은딸(8)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119에 신고한 뒤 도주했다.

이후 낮 12시 10분께 경북 문경시 농암면 종곡리 노상에서 경찰에 붙잡힌 강씨의 왼쪽 손목에는 주저흔(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자해한 상처)이 발견됐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에는 실직과 주식투자가 있었다.

강씨는 컴퓨터 관련 업체를 그만둔 뒤 지난 3년간 별다른 직장이 없었고, 아내도 특별한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결과 강씨는 아내에게만 실직 사실을 알리고 두 딸에게는 자신이 여전히 회사에 나가 돈을 벌고 있는 것처럼 꾸몄다.

40대의 나이 때문에 재취업이 되지 않고 모아놓은 돈이 떨어져 가자 강씨는 2012년 11월께 자신이 살고 있던 대형 아파트(146㎡)를 담보로 5억원을 빌려 마지막 도박에 나섰다.

아내에게 매달 400만원씩 생활비를 주고 나머지는 모두 주식에 투자했던 강씨는 결국 투자에 실패하고 생활비로 지출한 1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4억원 중 2억7000만원을 날렸다.

▲ 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아파트에서 남편 A씨가 부인과 두 딸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경찰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연합뉴스
강씨의 "아내와 딸을 목 졸라 살해했고 나도 죽으려고 나왔다"는 119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강씨의 집에 출동했을 때 아내는 거실에, 맏딸과 둘째딸은 각각 작은 방과 큰 방에서 숨져 있었다.

딸들이 누워 있던 침대에선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머플러 두 장이 발견됐으며, 이밖에 현장에는 강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노트 2장이 있었다.

유서로 보이는 노트에는 "미안해 여보, 미안해 ○○아, 천국으로 잘 가렴. 아빠는 지옥에서 죄 값을 치를게"라는 취지의 글이 적혀 있었고, "통장을 정리하면 돈이 좀 남는 것이 있을 텐데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의 치료비와 요양비 등에 쓰라"는 내용도 담겼다.

강씨는 경찰에서 범행사실 전체를 시인했고, 부인이나 자녀와 사전 상의 없이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는 2004년 5월께 이 아파트를 구입했고 현재 시가는 대략 8∼10억원 수준"이라면서 "강씨는 5억원 외에 다른 빚도 없는 상태여서 집을 팔고 생활수준을 낮추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씨는 온 가족이 죽는 쪽을 택했다.

경찰은 "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탓에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면서 "양쪽 부모는 모두 강씨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강씨가 가족을 살해한 뒤 충북 청주, 경북 상주, 경북 문경으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이해할 수 없는 동선을 보인 까닭도 정신적 공황 상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찰은 "강씨가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나온 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길을 달렸다"면서 "그는 심지어 자신이 검거된 장소가 어디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표창원(49) 전 경찰대 교수는 이번 사건과 관련, "절대적으로는 생활고라고 볼 수 없으나, 스스로 그 이전의 생활수준이나 교제하던 이웃, 같은 부류였던 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박탈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남은 것은 몰락뿐이란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강씨가 자존감 하락을 견디지 못하는 등 성격적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고, 대인·사회관계 폐쇄성 등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신아일보] 전호정 기자 jhj@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