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위축된 기업대출 가계대출로 만회
은행들, 위축된 기업대출 가계대출로 만회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5.01.0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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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대출 90%가 가계부문… 中企는 고작 3% 증가

▲ 6대 시중은행의 자영업자 대출을 제외한 중소기업대출 증가액이 4조3000억원에 머물렀다. 2013년 말 153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57조8000억원으로 늘어 증가율은 2.8%에 그쳤다. 반면 전세대출은  2013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우리은행의 경우 72.6%, 국민은행의 경우 66.6%가 늘었다.ⓒ연합뉴스
은행들이 고되고 책임이 큰 기업여신업무는 회피하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손쉬운 가계대출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외환은행 등 6대 시중은행의 자영업자 대출을 제외한 중소기업대출 증가액은 4조3000억원에 머물렀다.

2013년 말 153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57조8000억원으로 늘어 증가율은 2.8%에 그쳤다.

대기업대출은 2013년 말 98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00조4000억원으로 2.0% 늘어나 증가율이 중소기업대출에도 못 미쳤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은행마다 '중소기업대출 강화'를 외친 것과는 상반되는 결과다.

특히 기업금융의 강자로 불리는 우리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2013년 말 34조8549억원에서 지난해 34조5269억원으로 3280억원 줄었다.

반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것은 전세자금 대출이다. 2013년 말 11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6조6000억원으로 무려 43.9%가 늘어났다.

우리은행의 전세대출은 지난해 말 3조7337억원으로 2013년 말보다 72.6% 늘어나 6개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15.2%로, 시중은행 중 가장 높다.

국민은행도 지난해 말 중소기업·대기업대출 잔액이 전년보다 각각 4.91%, 0.25% 줄었다. 이에 반해 국민은행의 작년 말 전세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전년 같은 시기보다 각각 66.6%, 11.4% 늘어나 우리은행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전세의 월세 전환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등으로 전세매물 품귀 현상이 빚어져 전세가 상승률(4.4%)이 매매가(2.4%)보다 훨씬 높았던데다, 최근 수년 새 전세금이 많이 올라 은행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은행들이 겉으로는 중소기업대출을 늘린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하거나 성공 가능성이 확인된 중소기업에만 대출을 해주고 있다"며 "정부가 하라고 한다고 해서 형식적으로 하는 시늉만 하지 말고, 한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은행들의 기업대출 부진은 지난해 은행권이 잇따라 기업 대출사기에 연루되면서 기업 여신 규모가 크게 위축된데 있다.

금융당국은 KT ENS와 모뉴엘 사건 등 지난해 잇달아 터진 은행권의 기업 부실대출 사건에 대한 검사를 끝내고, 올해 초 관련자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를 예고한 바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주요 은행들은 KT라는 대기업의 이름과 모뉴엘의 조작된 명성만 보고 선뜻 큰돈을 내줬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은행권이 장기적 안목으로 기업여신 심사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현재 기업 대출의 가장 큰 문제는 국내 은행이 여신심사를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정부의 독려로 대부분 대출이 형식적이거나 성공 가능성이 확인된 업체에만 대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이 금융 위험이 큰 중소기업 대출에 대해서는 대기업처럼 정량적인 재무 데이터만을 보고 건전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특수성이 있다.

김 교수는 "중소기업 대출은 은행과 업체 간에 오랜 기간 거래관계에서 축적되는 정성적 정보가 필요하다"면서 "현재 국내 금융시장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이런 관계형 금융 기법을 발전시킬만한 유인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늘어난 은행권 대출액이 주택담보·전세자금·신용·자영업자 대출 등 가계대출 부문에 편중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 본연의 책무인 기업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아일보] 전호정 기자 jhj@shinia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