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촌스러움이 세계화와 통해”
“한국적 촌스러움이 세계화와 통해”
  • 고아라 기자
  • 승인 2014.12.21 13: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고재상하이 전시회 참가한 단색화 1세대 화가 하종현
 

“제가 1935년생입니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배고프고 어려웠어요. 너덜너덜한 마대를 맞춰놓고 물감을 밀어 넣으면 자기 멋대로 작품이 나왔죠. 그게 인생 같은 거예요. 제 작품 속에 보이는 흙빛 그리고 가난과 한국전쟁…. 이 모든 것이 작품을 형성한 것 같습니다.”

한국 단색화 1세대 화가 중 한 사람인 하종현는 지난 20일 중국 상하이의 예술특구 모간산루(莫干山路) 50호(M50)에 있는 학고재상하이에서 자신의 삶과 예술 인생을 돌아보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작품은 학고재상하이가 개관 1주년을 맞아 단색화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 발전에 큰 역할을 한 화가들을 조망하는 ‘생성의 자유’(Unconstraint Creation)전에 함께 전시되고 있다.

하종현은 마대 뒷면에 도구를 이용해 물감을 짓이겨 넣는 고유한 방식으로 작업을 해 왔다.

그는 “마대와 색깔이 비슷한 흙빛, 우리 어머니 옷이나 백자를 떠올리게 하는 백색, 오래된 기와집 같은 검은 빛깔 등으로 작품에 필요한 모든 재료가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어울리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의 색깔을 찾지 못해 본의 아니게 어정쩡한 작품세계를 갖는 제자들을 여럿 봤다”면서 “외국여행은 했어도 한국을 오랜 기간 떠나본 적 없는 경험이 고유함을 지키게 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에 나가면 외모를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 때가 생긴다”며 “때로는 그런 고유함이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촌스러움이 튀어나와야 세계화가 된다”고 강조했다.

홍익대 교수로 재직한 그는 지난 2001년 퇴직금으로 하종현 미술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작품명 ‘접합’으로 잘 알려진 그는 “마대와 물감의 질감으로 ‘접합’을 해 낸다”며 “어쩌면 제 작품이 그동안 잘 안 팔리다 보니 오늘 이렇게 보여 드릴 그림이 남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국아방가르드협회장, 서울시립미술관장을 맡았던 그는 1960년대 말 당시 입체나 설치작품이 많았지만, 자신은 평면(회화)으로 돌아가겠다며 남들과 다른 의미 있는 작품활동을 해 보겠다는 생각에 이같은 단색화를 그리게 됐다고 들려줬다.

이제 그는 “단색화가 금욕과 절제를 나타낸다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작품을 해 보고 싶어졌다”며 “여러 색채를 넣어 좀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백발에 짧은 말총머리를 한 그는 “중국에서 제 작품이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힌 뒤 “한국의 미술인들은 어려움 속에서 예술을 했는데, 외국인들도 그런 순수함을 느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학고재 측은 하종현의 작품 6점이 전시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대만, 중국인 컬렉터에게 모두 판매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