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주요 다리·터널·댐 등 안전진단서 '불법·부패' 만연
전국 주요 다리·터널·댐 등 안전진단서 '불법·부패' 만연
  • 연합뉴스
  • 승인 2014.12.0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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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시설물 안전성 평가에 '엉터리' 적발돼
검찰, 비리 공무원·공단직원·업체 대표 등 44명 기소

▲ 오인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차장검사가 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에서 국가 주요 시설물 안전진단 용역 비리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이후 '시설물 안전 특별법'이 제정됐음에도 우리 사회 주요 시설물들의 '안전 진단'이 여전히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의 다리, 터널, 항만, 댐 등 그 기능과 안전성이 매우 중요해 특별 관리해야 하는 주요 시설물의 안전 점검 과정에 뿌리 깊은 비리와 부패의 사슬이 얽혀 있음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한국시설안전공단은 정밀안전진단 업무를 불법으로 재하청하고, 발주처 공무원들은 뇌물을 받고, 안전진단 업체는 발주처의 퇴직 공무원인 이른바 '관피아'를 고용해 편법을 일삼았다.

이에 따라 전국 주요 시설물의 안전성을 다시 점검하고 안전진단과 관련한 편법과 불법의 뿌리를 뽑아낼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9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형사1부(최용석 부장검사)는 지난 6월부터 최근까지 국가 주요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과 정밀안전진단 용역 비리를 수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해수부·국토부 공무원, 한국시설안전공단 직원, 안전진단 업체 운영자, 무등록 하수급업자 등 23명을 구속 기소하고 2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중간 수사 결과, 용역 업체로 선정된 안전진단 업체들은 발주처의 관리·감독을 피하고 입찰 과정에서 유리한 정보를 얻으려 발주처 소속 공무원이나 직원에게 지속적으로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국토교통부 서기관 전모(52)씨, 한국수력원자력 권모(44) 차장, 부산교통공사 박모(54) 과장, 해양수산부 사무관 김모(58)씨, 한국도로공사 전 처장 김모(56)씨와 이모(48) 팀장을 모두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들이 한국건설품질연구원 등에서 챙긴 뇌물은 각자 1300만∼2천100만원에 달했다.

특히 국토부 서기관 전씨는 안전 관련 법령 제·개정 때 안전진단 업체의 의견을 반영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현금 2천만원과 여행경비 등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서울메트로 장모(52) 차장은 진단 용역의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한국건설품질연구원장으로부터 고급승용차 구입대금 등 모두 7천500만원을 챙긴 혐의(특가법상 뇌물)로 구속기소됐다.

발주처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한국시설안전공단 직원들의 비리 관행도 무더기로 드러났다.

▲ 오인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차장검사가 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에서 국가 주요 시설물 안전진단 용역 비리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단 직원들은 안전진단 업체 운영자와 공모해 정밀안전진단 업무를 불법으로 재하청을 주고 이를 숨기려고 관련 없는 직원을 채용해 정밀진단 업무를 수행한 것처럼 가장하기까지 했다.

진단 현장에서 일하지 않았음에도 직원의 일당을 거짓으로 청구해 챙겼다. 불법으로 각자 챙긴 금액이 2억원대에 달했다.

이에 따라 한국시설안전공단 전 직원 변모(59·당시 부장)씨와 안전진단본부 소속 고모(48) 부장 등 4명이 사기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모(47) 차장 등 2명은 사기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안전진단 업체들은 공사 수주 금액의 55∼54% 수준에 불과한 저가로, 영세 무등록 업체들에 하청을 맡겼다.

발주처 퇴직 공무원을 고용해 '원장' 또는 '부원장'이라는 직함을 주고 소속 발주처에 뇌물을 주는 데 활용했다.

안전진단업계에도 전형적인 '민·관유착' 내지 이른바 '관피아' 관행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안전진단업체 운영자와 무등록 하수급업자 등을 모두 사기 또는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했다.

안전진단 대상 국가 주요 시설물 가운데 이런 비리와 관련된 것은 258개에 달한다.

특히, 한국시설안전공단이 정밀안전진단을 한 일정 규모 이상의 특별 관리 대상 주요 시설물 65곳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러한 진단 과정을 거친 국가시설물들이 실제로 안전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수사결과를 국무총리실 산하 부패처결추진단에 통보, 해당 시설물의 안전성 점검을 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요청했다.

한편, 한국시설안전공단은 이런 비리 사슬에도 불구하고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2012∼2014년 3년 연속 종합 2위를 차지하며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정부의 기관 청렴도 평가나 감사의 허점을 드러냈다.

고양지청 오인서 차장검사는 "이번 수사는 안전점검과 진단 관련 비리를 적발한 최초의 사례로, 구조적이고 관행적인 민관유착 비리를 적발한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오 차장검사는 관련 공무원과 업계 등의 행태에 비춰볼 때 국민 안전과 관련한 부정·불법 사례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