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서 내려온 박영선
'폭풍의 언덕'서 내려온 박영선
  • 온라인 편집부
  • 승인 2014.10.0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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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사퇴한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 원내대표의 자리가 비어 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활을 들고 협상이라는 씨름을 벌이는 시간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2일 결국 임기의 반환점을 앞에 두고 중도하차, 제1야당의 원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곡절 많은 세월호특별법의 긴 터널을 힘겹게 빠져나온 뒤 '세월호법 수습을 위한 마지막 노력을 한 후 결과에 관련없이 사퇴한다'는 약속대로 '폭풍의 언덕' 위에 올라섰던 약 다섯달의 기록을 뒤로 하고 '평의원 박영선'으로 돌아갔다.

지난 5월8일 원내대표직에 오른 지 147일만이자, 지난달 17일 탈당 파동 끝에 비대위원장직을 그만두고 당무에 복귀한 시점으로 따져서 15일만의 '씁쓸한 퇴장'이다.

박 원내대표는 헌정 사상 주요정당의 첫 여성 원내대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유리천장'을 깨고 화려하게 등장한 뒤 8월4일 7·30 재보선 참패의 늪에 빠진 당을 재건할 비상대권을 넘겨받아 '원톱 구원투수'인 비대위원장으로 전면에 섰다.

하지만 1,2차 세월호법 협상 추인 불발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 무산 파동 등을 거치며 당은 극심한 내홍을 겪으며 혼돈 상태에 빠져들었고, 박 원내대표의 리더십도 회복불능의 큰 타격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강경파 그룹 등 지지기반도 하나둘씩 등을 돌리면서 박 원내대표는 그야말로 '고립무원', '사면초가'에 처했다.

박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 영입 무산 파동 와중에 당 강경파를 중심으로 사퇴 주장이 거세지자 '탈당 검토'라는 극단적 카드까지 꺼내들었고, 당의 만류 속에 '세월호 협상 수습 때까지'를 기한으로 정한 '시한부' 꼬리표를 달고 당무에 복귀했다.

박 원내대표로선 이번 사퇴로 그동안 성공시대를 달려온 정치인생 10년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부드러운 직선'을 표방하며 대표적인 대여 저격수라는 강성 이미지를 벗고 '탈(脫) 투쟁정당'이라는 합리적 중도 노선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던 그의 새로운 실험도 당내 강경파의 벽에 부딪혀 좌초된 상황이다.

'세월호 국회'를 취임 일성으로 내세웠던 박 원내대표는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법 협상의 매듭을 푸는 임무를 완수, 어느 정도 명예회복을 이뤄냄으로써 '불명예 퇴진'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결코 녹록지 않은 후속 협상을 과제로 남긴 '미완의 타결'이었던데다 임기 내내 깊은 생채기를 남기면서 당분간 시련기를 거칠 것이라는 게 당내 대체적 관측이다. 당내 소통 부족으로 표출된 독단적 리더십 논란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당분간 '와신상담'을 하며 재기의 기회를 엿보겠지만, '원내 수장'으로서 적잖은 한계를 드러내며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아진 상태여서 당장 '부활'이 쉽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의 좌절이 고질적 계파정치의 희생물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은데다 계파이해 관계에 매몰된 폐쇄적 이념정당에 맞선 변화의 시도가 중도·무당파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면서 활동재개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박 원내대표 스스로 이날 사퇴 서한에서 "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며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한 지금 우리당이 겪고 있는 고통은 치유되기 힘들다는 것을 어렵사리 말씀린다"며 반대파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한 중진의원은 "정기국회 기간 소속 상임위인 기획재정위 활동을 통해 다시 두각을 드러낸다면 재기의 기회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야권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이라는 상징성도 여전히 자산으로 꼽힌다.

특히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의 비대위 불참으로 중도온건파의 당내 입지가 좁아진 가운데 향후 당내 주도권 경쟁 과정에서 박 원내대표가 이들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저변을 넓혀나갈 가능성도 일각에서 점치고 있다. 아직 '설익은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내년초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