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생존학생 "해경, 갑판서 헬기 탑승만 도와"
세월호 생존학생 "해경, 갑판서 헬기 탑승만 도와"
  • 주영준 기자
  • 승인 2014.07.2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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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 증인신문…대부분 트라우마로 고통

세월호 승무원 재판 생존학생 증인신문 이틀째 해경이 사고 당시 적극적인 구조 시도 없이 갑판에만 머물렀다는 증언이 나왔다.

학생들은 사고 자체가 아닌 사고 이후 미흡한 조치로 희생자들이 늘어났다며 사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29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임정엽) 심리로 열린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공판에서 전날에 이어 단원고 생존 학생 16명이 증인으로 나섰다.

4층 B28 선실에 머물던 A양은 "선실에서 갑판까지 오르막인데 옆방에 있던 아저씨가 커튼을 뜯어서 만든 로프를 내려줘서 잡고 올라왔다"며 "갑판에 도착해보니 해경이 계단 옆 외벽에 서 있었다"고 증언했다.

배 안에 사람이 많다고 말해줬느냐는 검사 질문에는 "해경이 위에서 다 볼 수 있는 상황이었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며 "친구로부터 해경이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은 올라오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고 대답했다.

일반인 승객의 도움을 받아 B23 선실에서 나왔다는 B양은 갑판에 나와 헬기를 탈 때에만 해경의 도움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C양은 "갑판에 있던 해경이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했고 D양은 "해경은 갑판 외벽에 서서 헬기로 올려주기만 했고 생존자들이 빠져나오던 출입구 쪽으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다만, D양은 "해경이 서있던 외벽과 출입문이 떨어져 있어 배 안쪽을 살펴보기 어려웠을 것 같고 헬기 소리 때문에 살려달라는 비명을 들었을 가능성도 적다"고 덧붙였다.

오후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남학생 8명도 친구 또는 승객의 도움을 받아 배에서 빠져나왔다고 탈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학생들은 승무원과 해경 등의 미흡한 사고 대처 때문에 인명피해가 늘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학생은 "우리는 단순히 수학여행 길에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사고 후 잘못된 대처로 이렇게 많은 목숨을 잃은 것"이라며 "탈출 당시 건너편 친구랑 눈이 마주쳤는데 결국 배에서 나오지 못한 그 친구가 바닷물에 잠긴 모습이 떠올라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학생도 "대기하다가 탈출하는데 1시간 정도 걸렸으니 처음부터 대피하라고 했으면 훨씬 많이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배 앞에 구명보트라도 있었다면 뛰어내렸을 텐데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전날에 이어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호소하며 비교적 차분히 증언을 마무리했지만 일부는 사고 이후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E군은 "구조되기 전에 화장실 앞에 어떤 여자애랑 있었는데 그 애는 결국 못 나왔다고 들었다"며 '괴롭나?'라는 검사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 흘렸다.

F군은 "구조된 날 씻으려고 샤워기를 틀어 물이 쏟아지는 순간 숨이 턱 막혔고 가장 친했던 친구 12명이 죽어 요즘은 학교에서 혼자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린다"고 털어놨다.

G양도 "배와 관련되거나 친구들이 죽는 꿈을 많이 꾼다"며 고통스러워했다.

재판부는 증인신문에 나선 생존학생들이 미성년자이고 대부분 안산에 거주하며 사고 후유증으로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이날까지 이틀간 그동안 재판이 열린 광주가 아닌 안산에서 재판을 진행했다.

더불어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화상증언을 계획했지만 학생 대부분이 친구·교사 또는 부모와 함께 증인석에 앉는 조건으로 법정 증언을 희망해 1명을 제외한 21명의 학생이 직접 법정에 나왔다.

이준석 선장 등 피고인들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고 재판부의 비공개 결정에 따라 학생 가족과 취재진 등 10여명만 재판을 지켜봤다.

다음 공판은 다음 달 12일 광주지법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