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내에서 대북 대화론 슬슬 부상
워싱턴 내에서 대북 대화론 슬슬 부상
  • 주영준 기자
  • 승인 2014.07.1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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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인내' 정책에 의문 제기

미국 워싱턴 내에서 대북 대화론이 조심스럽게 부상하고 있다.

북한이 아무런 '제동'없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논리에 터잡고 있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가 최근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이 물꼬를 텄다. 그는 "미국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며 북한과 '탐색적 대화'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1기 대북제재 정책을 상징해온 인물의 '방향전환'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캐슬린 문 한국석좌도 가세했다. 그는 13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6자회담의 에너지가 고갈됐다"며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막후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핵 과학자인 찰스 퍼거슨 미국 과학자협회(FAS) 회장도 연합뉴스에 "모든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북한과 다시 대화해야 한다"고 주문해다.

사실 대북 대화론은 작년말부터 물밑 내연해왔다. 진보성향 학자들뿐만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에 몸담았던 관료출신들까지 목소리를 내왔다. 오바마 경선캠프에서 한반도문제를 다뤘던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 스티븐 보즈워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 제프리 베이더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대표적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한과 협상했던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북핵 특사, 조엘 위트 전 국무부 북한담당관, 로버트 칼린 전 국무부 정보국장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대화론의 핵심은 제제와 압박에 무게를 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대북 제재가 북한을 고립화하고 경제적 타격을 주고 있지만 핵과 미사일 개발에는 '제어효과'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북한을 더이상 의도적으로 무시하지 말고 '협상의 틀'로 끌어낼 수 있도록 외교적 행보를 시작하라는 주문이다. 특히 6자회담의 틀 대신 북한을 상대로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략적 이해가 상이한 중국에 마냥 의존하지 말고 직접 북한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고 비핵화 협상에 나서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같은 대화론은 워싱턴 내에서 소수론이다. 과거의 '트랙 레코드'로 볼 때 북한이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겠다고 확약하지 않는 한 협상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기류가 광범위하게 형성돼있기 때문이다.

특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를 중심으로 한 오바마 행정부 최고 정책서클 내에서 이 같은 분위기가 한층 강해보인다. 시드니 사일러 백악관 NSC 한반도보좌관은 연합뉴스에 "우리는 대북정책에 유연하고 북한과의 대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관심이 없어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6년간 고수해온 대북정책 기조를 특단의 사정없이 변경하기는 어렵고 더욱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무리수를 감행할지는 미지수라는 시각이 나온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으로는 정책결정권자들 사이에 '북핵 피로' 현상이 심화돼있다는 분석이다. 북핵문제는 대화로도, 제재로도 풀리기 어렵다는 인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최근 연합뉴스에 "한편의 코미디 영화가 어떤 대북제재보다도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피로감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따라서 북핵문제를 무리하게 '해결'하기보다는 상황을 '관리'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진정한 대북정책 목표가 비핵화라기보다는 '본토방어'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래리 닉쉬 전 의회조사국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핵무기를 소형화한 뒤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실어 본토를 공격하는 상황에 막는게 초점"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워싱턴 싱크탱크 내에서 터져나오는 대북 대화론이 서서히 오바마 행정부에 정책적 부담으로 다가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국제사회의 제재강도가 높아지겠지만 동시에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성공여부가 시험대에 오를 공산이 작지 않은 탓이다.

중국도 지난주 전략경제대화를 통해 미국에 또다시 대화에 나서라는 압박을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최근 도발 행보를 자제하면서 일본과 러시아를 상대로 '외교적 플레이'를 시도하고 남한을 상대로 유화 제스처를 보이는 것도 대화론이 탄력을 받을 외교적 환경이 될 수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현 시점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정책적 유동성이 조심스럽게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미 제네바 합의 20주년을 맞아 미국 하원 외교위 산하 아·태 소위가 오는 30일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를 출석시킨 가운데 청문회를 가질 예정이어서 오바마 대북정책 기조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