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희망을 찾는다] ‘감물’ 전문생산하는 한동근씨
[농촌에서 희망을 찾는다] ‘감물’ 전문생산하는 한동근씨
  • 김가애 기자
  • 승인 2014.07.09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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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서 감 농사 지어… “귀농은 몸에 옷 맞춰 입는 것”
▲ 귀농을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한동근씨가 감물작업을 하고 있다.

“벼농사에 비해 소득 몇 배나 높아 스스로 만족
귀농 7년 한번도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어”

[신아일보=김가애 기자] “귀농을 한 지 7년이 훌쩍 지났지만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시골에 내려와 사는 것을 후회한 적은 혹시 없었느냐는 질문에 한동근(62)씨는 “이 살기 좋은 농촌에서 후회가 말이 되겠습니까?”라며 오히려 반문한다.

젊은 시절 20여년 간 선박원 생활도 했고, 15년간 대구에서 전문 건설업체도 운영하며 심신의 피로를 ‘벗’삼아 살던 그는 지난 2007년 경북 청도군으로 돌연 귀농했다.

자녀들이 모두 장성해 독립했기 때문에 귀농과정에서 가족의 반대 또한 없었다. 아내 역시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귀농 전 그는 인터넷을 통해 귀농 정보를 습득했고, 주말이면 이곳 저곳을 다니며 귀농지역 선택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침내 청도군 이서면의 한 마을로 귀농지역을 선택한 그는, 잠시 대구에 아내를 두고 혼자 내려와 빈 농가에 임시 거주하면서 농사를 지을 땅과 거주할 집을 알아보는 등 발품을 팔아 귀농 기초단계를 다졌다.

귀농초기 그는 감, 콩, 채소 등을 재배하며 비교적 ‘가볍게’ 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귀농 초기부터 ‘대박’을 기대할 수는 없었을 터.

당시 거의 실패에 가까운 수확을 했던 그는 “초창기부터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며 “오히려 마음을 다잡는 기회가 됐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귀농하고 거의 1년은 가벼운 농사를 지으면서 소득 없이 노느라 바빴다”며 “경로당을 제집 드나들듯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귀농직후 마을에서 ‘만인의 아들’을 자처했다. 매일같이 경로당을 드나들며 마을 어르신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고, 술심부름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그는 아들이자, 술친구였던 것이다.

귀농 전 만만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1년 동안 소득이 없어도 생활에 타격은 없었다. 오히려 그 1년 동안 그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농사에 대한 수 많은 정보를 얻고, 완전히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작목선택에 대해 고민하던 중,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반시아카데미 영농교육을 신청하게됐으며, 이때 그는 “주 작목을 감으로 결정하고, 감을 이용한 가공산업으로 진로를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5000㎡의 작목 면적에 감 농사를 지으며, 감을 이용한 염색염료를 생산하고 있다.

“감염료는 소득이 일반 벼농사보다 몇배나 높은데 비해 일손이 적게들어 일손이 부족한 내가 하기에는 ‘딱’이다”며 그는 스스로 소득이나 생활에 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감이 타닌성분이 가장 왕성한 시기인 9~10월에 50~60t가량을 수확해 감물을 생산해 판매한다.

“타닌 성분으로 염색한 옷감은 통기성이 염색전에 비해 2~3배 가량 높아진다”며 “감물염색은 견뢰도가 가장 높고 물도 잘 빠지지 않는데다가 시원하고 자외선을 차단해준다”는 등 감물염색의 장점을 설명해줬다.

실제 감물염색 옷감은 한국섬유기술연구소의 시험결과 방충효과와 향균성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경북대학교와 청도군 농업기술센터가 공동 실험한 결과 집진드기의 활동을 줄여주며 피부병 및 아토피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기도 했다.

그는 “귀농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오히려 더 빨리 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귀농은 몸에 맞는 옷을 맞춰 입는 것”이라며 “본인의 상황에 맞게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그는 지난 2009년 발족한 ‘청도군 귀농인연합회’ 초대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8500여명의 새내기 귀농인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이끄는 경북귀농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도시에서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의 얼굴은 항상 화색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