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선유도와 월드컵 공원 - 쓰레기 더미서 옛 명성 되찾은 난지도와 신선이 논 선유도
(11) 선유도와 월드컵 공원 - 쓰레기 더미서 옛 명성 되찾은 난지도와 신선이 논 선유도
  • 주장환 작가
  • 승인 2014.07.0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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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교 초지 토끼풀은 마치 눈밭처럼 살아나고
난지연못은 웅크린 등으로 모든 걸 감싸고 있네

비가 내릴 듯 말 듯 했다. 초여름의 비는 금비다. 그것은 생명들을 요동치게 하고 숨결을 불어 넣어준다. 그리하여 무성하게 자라나는 연록의 풀들이며 물오르는 나무들, 그리고 지상의 아름다움을 맘껏 간직한 꽃들까지도 요염하게 몸을 틀 기회를 마련해 주지 않던가?

한강시민공원 양화지구 선유교 아래에서 강태공들은 비가 머뭇거리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먹구름을 잔뜩 머금고 있던 구름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비를 내렸다. 그러자 다리 밑으로 사람들이 우루루 모여들었다. 하지만 나무와 풀과 꽃들은 가슴을 활짝 열고 그 비를 마음껏 맞기 시작했다. 그것은 환희였다. 환호성 치는 듯한 녹지의 합창은 비록 잠깐이었지만 황홀했다.

비는 채 5분도 안 되어 그쳤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다. 숨죽이고 있던 나무와 풀과 꽃들에 생기가 돌았다. 그 중에서도 선유교를 중심으로 좌우 족히 1km는 넘게 조성되어 있는 토끼풀들이 마치 눈밭처럼 살아났다.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는 토끼풀들은 여름 속 겨울 이야기를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 양평동 쪽에서 바라본 선유교.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 신선들이 뱃놀이 즐기던 곳

'물(水)의 공원'이라 불리는 선유도는, 정수장 건축구조물을 재활용하여 국내 최초로 조성된 환경재생 생태공원이다. 양화대교를 조금 지나면 만날 수 있는데, 원래 선유봉(仙遊峰)이라는 작은 언덕이 있어 신선들이 뱃놀이를 하며 즐겼다고 한다. 겸제 정선이 견본담채 기법으로 그린 수묵채색화를 보면, 큰 봉우리가 있고 작은 언덕들 사이로 민가가 몇 개 보인다. 산의 형국이 고양이 같이 생겼다고 하여, 일명 고양이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일제는 선유봉을 채석장으로 사용하여 절반 이상을 깎아냈고, 광복 후에는 미군들이 인천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채석장으로 사용했다. 1962년 제2한강교의 착공으로, 선유봉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모래밭이 생겼다. 1965년 양화대교가 개통되고, 1968년 본격적인 한강 개발이 시작되면서 선유도는 섬이 되었다고 한다.

1978년에는 선유도 정수장이 신설되었다. 2000년 선유도 정수장이 폐쇄된 후, 물을 주제로 한 공원으로 만들기로 하고 산업화의 증거물인 정수장 건축 시설물을 재활용하여 녹색 기둥의 정원, 시간의 정원, 물을 주제로 한 수질정화원, 수생식물원 등을 만들었다. 2002년 4월 26일, 선유도공원으로 문을 열면서 시민들이 찾기 시작했다.

선유교에 오르자,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에 정신이 아득해지는가 싶더니 초여름 바람에 취한 듯 빠르게 서쪽으로 내닫고 있는 강물을 바라다보며 넋을 잃고 말았다. 나무로만 만들어진 보행전용 다리로, 프랑스 기술자들이 자문해줬다고 한다.

선유도 다리를 건넌 다음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을 향해보자. 11㏊ 정도밖에 안 되니만큼, 어느 곳으로 가든지 정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햇살이 따가우면 정자를 찾아도 좋고, 아름드리나무 아래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의 이야기를 들어도 좋다. 공원 내부는 크게 산책로와 정원 공간으로 나뉜다. 누군가가 '한강을 한강 안에서 바라보는 이색적인 장소'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북으로 가면 멀리 북한산까지 북단을 바라 볼 수 있고, 남으로는 양평동, 동남으로는 여의도며 멀리 잠실에서 내려오는 소리들도 들을 수 있으며, 서로는 임진나루 황포돛대의 사연도 들을 수 있다.

여과지를 재활용한 수생식물원은 마음을 정갈하게 만들어줘서 좋다. 약품 침전지의 구조물을 개조해 물속의 질소, 인 등 오염물질을 정화한다고 들었다. 서울 디자인 갤러리에 들어가 서울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도 공부해 보자. 콘크리트로 만든 방명록도 흉하지 않게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끌어당긴다. 담쟁이 넝쿨이며 빈 의자, 정물 같은 피아노도 낭만을 자아낸다. 자작나무 숲과 미루나무 길을 거닐며 슬그머니 연인의 손을 잡아 보는 기분도 괜찮을 성싶다. 나이 든 사람이든 젊은 청춘이든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적은 녹색 보드에 서서 잠시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옛 정수장 구조물의 콘크리트 기둥을 따라 자라나는 넝쿨식물이 녹색의 기둥을 만드는 역사관은 송수 펌프 건물을 이용하여 한강의 생태와 문화유적, 한강관리의 역사를 찾아보는 곳이며, 침전지 건물의 외벽을 살린 시간의 정원은 거친 인공의 외벽을 따라 마음껏 자라는 식물들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홍보지에서 설명하고 있다. 찌르레기, 직박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 자주 들린다 하나, '그 놈이 그 놈' 같아서 전문가와 동행이라도 해야 구분이 가능할 듯하다.

▲ 선유도로 들어가는 선유교. 사람들은 신선이 된 기분으로 건넌다.

■ 291계단 오르면 하늘공원

선유도를 나와 곧장 한강을 건너 난지도(하늘공원)로 가려면, 양화대교를 건너거나 저 멀리 가양대교까지 서쪽으로 올라가서 건너는 방법 등 다양하다. 하여간 선유도에서 한강을 건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유도 뒤쪽 문(양화대교 방향)으로 나가는 것인데, 가끔 통행이 차단되는 경우가 있으니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려면 미리 염탐(?)해 볼 일이다.

월드컵공원은, 공원 내 조성된 평화의 공원과 난지도 일대를 중심으로 조성된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등을 모두 아우른다. 그래서 서로간의 연계성이 좋아 지루하지 않게 구경할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로 가장 가깝게 닿을 수 있는 곳이 월드컵경기장과 월드컵공원이므로, 월드컵경기장을 일별하고 나서 평화의 공원 쪽으로 코스를 잡는 것이 현명한 방법으로 보인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월드컵경기장 동문쪽과 인접해 있는 불광천도 간 김에 들러 거닐어 봄직하다.


난지 연못

그는 지금까지 진실한 사랑을 본 적이 없기에
사랑을 기다리는 일을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이슬 내리는 연못,
공원 한가운데 연꽃을 등에 지고 있는 그는
무턱대고 기다리기만 합니다.
갈잠자리가 날면 나는 대로
소금쟁이가 요동치면 치는 대로
웅크린 등으로 모든 걸 감싸고 아무 말 없습니다

물이 들어오고 또 물이 빠져 나가면
알몸으로 하늘을 바라보기만 할 뿐
부들이 소리치든 수련이 속삭이든
억새가 부스럭거리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진실한 사랑이 뭔지 몰랐기에
사랑을 기다리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졸시(拙詩)>

난지연못은 평화의 공원 한가운데 있다. 지금 같은 여름날 오후, 영그는 사랑 따라 영혼의 작은 울림까지도 느끼게 만드는 그런 곳이다.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을 잠시 뉘어놓고, 연못을 가만히 바라다보자. 영혼의 푸른 밭을 가꿀 수 있으리라.

이곳에서 맑은 영혼을 건져냈다면, 조금 더 걸어 하늘공원으로 가보자. 구름다리를 건너면 하늘공원으로 오르는 291개의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오르는 대신 왼편으로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만나러 가는 것도 선택 사항이다.

▲ 하늘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 밑으로 쭉 내려가면 평화공원이다.

해발고도 98m 높이에 있는 하늘공원에서는 서울시내는 물론 남산·북한산·관악산을 육안으로 볼 수 있으며, 22개의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또 5만 평의 초지에는 참억새, 서양민들레, 갓꽃 등이 심어져 있고, 지름 8m의 날개가 돌아가는 5대의 풍력 발전기가 세워져 있다.

하늘공원은 난지도 제2매립지에 들어선 초지(草地)공원으로, 난지도 중에서 가장 토양이 척박한 지역이었다.

난지도는 망원정 부군에서 한강과 갈라진 난지 샛강이 행주산성 쪽에서 다시 본류와 합쳐지면서 생긴 섬으로, 풍류가객들을 실은 놀잇배가 심심찮게 눈에 띄던 곳이었다.

난지도의 '난지(蘭芝)'는 난초와 지초(芝草)를 아우르는 말로 우리 엣 아름다운 여인들의 이름에서도 자주 만난다. 난은 그 고고한 자태가 선비를 닮았다고 했다. 서상만 시인은 그의 시 <난(蘭)>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허공에 칼을 댄다/ 자칫, 한눈팔면/ 문사의 붓끝도 무사의 칼날도/ 난蘭 날에 다친다.>

지초는 산삼에 버금가는 전설적인 약초로, 하늘과 땅의 음한의 기운을 받아 자라는 약초이므로 여성의 자궁처럼 생긴 곳에서 많이 난다고 했다. 사람 사이의 아름답고 고상한 사귐을 '지란지교(芝蘭之交)'라 하지 않던가.

1970년도 초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는 상암동의 상징과도 같았다. 남쪽으로 홍제천, 북쪽으로는 성산천, 또 동쪽으로는 샛강 난지천에 둘러싸인 약 82만3000평의 땅이다. 난지도는 땅콩과 수수를 재배하던 밭이 있던 평지로, 물난리를 예사로 알던 지역이었다. 귀이깨, 모르치, 물치, 구릉지 같은 이름으로 불렸던 상암동은 수색동 앞 넓은 들 건너 마을로 장마 때에는 한강 물이 이곳까지 넘쳐왔다고 한다.

멀리 4대문 안에 살던 학생들은 소풍을 오기도 했으며, 애정이 물 오른 연인들이 남몰래 사랑을 속삭이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던 이곳이 서울 쓰레기의 집합소로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은 1978년 3월부터이다. 서울시민들이 쏟아내는 오물과 쓰레기들을 이곳에다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15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꽃 피고 새가 날아들던 난지도는 어느 새 높이 98m에 이르는 거대한 쓰레기 산 두 개로 변했다. 사람들은 이곳을 먼지와 악취, 그리고 파리가 많다고 해서 '삼다도'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땅은 상암이란 옛말을 되찾은 듯 천지개벽했다. 김정호의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나 <수선전도(首善全圖)>에는 꽃이 피어있는 섬이라는 의미의 '중초도(中草島)'로 기록되었다는데, 이제 그 이름을 다시 되찾았다 싶을 정도로 면모를 일신했다.

▲ 하늘 공원 억새밭. 가을이면 서녘으로 넘어가는 햇살에 눈물 흘린다.

■ 맹꽁이 우는 노을 공원

하늘공원 계단을 다 올라 공원으로 내달아 가면 억새밭이 풍성하다. 공원 중앙에 나있는 큰 길에는 호박이며 여주 같은 것을 심어 놓은 구조물이 보이고, 하늘공원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인 '하늘을 담는 그릇'도 보인다 한강변에 강변 북로와 난지한강공원보이고, 한강 남쪽으로는 영등포와 여의도 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철새들은 이미 무리지어 북으로 날아가고 없었다. 여러 종의 철새 수십만 마리가 겨울을 나기 위해 한강으로 날아들 때면 바로 이 난지도 위에서부터 내려앉기 시작한다고 하여, 옛 시인들은 '문섬(門島)'이라 미화해 부르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서쪽으로는 노을공원이 있다. 노을캠핑장과 조각공원, 파크골프장이 들어서 있고, 그 밑으로 난지천공원이 한강으로 물길을 내놓고 있다. 서녘 하늘로 지는 노을이 인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니, 해 저물 무렵에 들르게 되면 느긋하게 감상해보자.

내려오는 길에 맹꽁이가 울어댔다. 시골 어머니 산소에 갔을 때 들었던 소리였다. 맹꽁이 울음은 추억의 소리다. 그것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이자, 소낙비가 지나간 후 멀리 떠나간 누이의 귀환을 기다리던 소리이기도 했다. 아 참! 참고로 291계단을 다 올라 왼편 숲속 능선길을 따라가다 보면, 농익은 오디가 저절로 툭툭 떨어져 내리고 있어 입만 벌리고 있어도 간단히 요기할 수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