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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성지에는 순교자들의 아픔 새기는 현장 재현돼 “뭉클”
순교성지에는 순교자들의 아픔 새기는 현장 재현돼 “뭉클”
  • 주장환 취재국장
  • 승인 2014.06.24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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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프란치스코 교황 오시는 해미 지역 下

 
■ ‘여숫골’의 슬픈 역사

교회가 이곳을 순교지로 인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부의 연장 끝에 걸려들어 버려지던 뼈들이 많았다 하는데, 이 때 캐어내던 뼈들은 바로 서있는 채 발견됐다고 한다. 그것은 죽은 몸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 묻혔다는 증거라는 것이 천주교 학자들의 말이다.

▲ 끌려가는 순교자들을 기린 조형물. 그때의 참혹함이 되살아나는 듯 처절하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하략) -최영미
<선운사>-

낙화는 슬프다. 눈물 속에 지는 꽃 이파리들에 한이 맺혀 있다. 꽃 한 송이에도 가슴에 물기가 고일 때가 있다. 해미의 꽃은 해마다 봄날이면 새로 피지만 영영 아프다.

해미읍성을 나와 바로 길을 걸으면 한적한 읍 풍경에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한 5분 걸으면 해미천이 나타난다. 제방을 걸어 10여분 가면 읍내리 해미 순교성지를 만날 수 있다.

박해가 심했던 1797년부터 1866년까지 수천 명이 넘는 무명 순교자가 나온 이 일대는 "예수 마리아!"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듣던 곳으로 ‘여숫골’로 불린다.

해미 순교성지 안에는 성인들의 모습은 물론 성모마리아가 슬퍼 보이는 진둠벙이며, 무덤이 통곡하는 순교탑, 그리고 십자가의 길 등이 조성돼 있다. 이곳 지역 첫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가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 천주님께 바치는 거야”라고 한 말을 새긴 돌 조형물은 마음을 눅눅해지게 만든다.

▲ 첫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가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 천주님께 바치는 거야”라고 한 말을 돌에 새겼다.

■ 교황 오시는 해미성지

순교탑은 1935년 서산 본당의 베드로 신부가 순교자 유해 일부와 유품 등을 발굴했고, 1995년에 유해 발굴터인 원위치로 안장됐다. 순교자 유해는 별도로 보존 처리돼 보존되고 있다. 1975년에는 유해 발굴지 인근에 높이 16m의 철근 콘크리트 조형물인 해미 순교탑이 세워졌다.

오는 8월이면 이곳은 세계적인 조명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참혹한 역사를 몰랐던 전세계인들이 이제 이곳의 슬픔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가면 이 억울한 원혼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까?

8월 14일~18일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하면서 이곳을 찾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천주교사에 유례가 없는 이 살육의 현장에서 슬픈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교황은 8월 17일 오전 해미 한서대학교에서 열리는 아시아 주교회의에 참석한 후, 오후에는 이번 대회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폐막미사를 해미읍성에서 집전할 예정이다.

교황의 폐막미사는 CNN 등 외신들이 앞다투어 전 세계에 중계한다. 그 날 죽음을 택한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찬송하며 넘던 한티고개에서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떠나온 가족을 그리며 비로소 단장의 한을 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천주교인으로서 유배를 당했던 정약용의 시 <애절양(哀絶陽)>을 들어보자.

갈밭마을 젊은 아낙 통곡소리 그칠 줄 모르고
관청문을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정벌 나간 남편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예부터 남자가 생식기를 잘랐단 말 들어 보지 못했네(하략)

이 시를 쓴 동기는 <목민심서> ‘첨정(簽丁)’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이것은 가경 계해년(1803) 가을에 내가 강진에 있으면서 지은 것이다. 그때 갈밭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적에 편입되고 이정이 소를 토색질해 가니, 그 백성이 칼을 뽑아 자신의 양경을 스스로 베면서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러한 곤액을 받는다.’ 하였다. 그 아내가 양경을 가지고 관청에 나아가니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울기도 하고 하소연하기도 했으나, 문지기가 막아 버렸다. 내가 듣고 이 시를 지었다.”


*한티고개

가야산과 덕숭산이 맞닿는 골짜기, 덕산에서 해미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다. 한티와 고개로 나뉘고, 한티는 다시 한과 티로 나눌 수 있다. 한은 많다 혹은 크다(多,大)를 의미한다. 따라서 한티는 ‘큰 고개’로 풀이할 수 있다. 한티고개는 한티에 티와 의미가 같은 고개를 덧붙인 유의 중복 어형이다.

1790년부터 1880까지 박해기간 동안 해미 진영에서 관장하던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어 한티 고개를 끌려 넘어가 해미 진영 서문 밖 사형장에서 처형됐다.

덕산 쪽에서 오르는 길은 덕산읍내에서 해미 방면으로 가는 오른쪽 입구에 <한티고개 - 순교자 압송로, 2km> 푯말이 보인다. 고갯길에 설치되어 있는 십자가의 길은 고개 정상에 1처가 시작되어 해미 방면으로 14처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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