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와 슬로푸드가 주는 즐거움
로컬푸드와 슬로푸드가 주는 즐거움
  • 주장환 순회특파원
  • 승인 2014.05.1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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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주장환 순회특파원

‘느리게 즐기며 먹고 잘 살자’가 핵심
예부터 즐기던 음식이 가장 조화로워

요사이 ‘느림의 미학’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이런 유의 삶의 방식이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수년 전 이탈리아 북부의 피에몬테 지역을 가본 적이 있다. 로마군들의 행군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올 듯한 이 지역은 현대와 고대가 잘 공존돼 있다. 송로버섯. 호박, 견과류 그리고 4대 와인으로 불리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가 유명하다. 또, 이탈리아 전통음식의 뿌리가 그대로 보존돼 있어 본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수도인 토리노 시장이 초대한 만찬에서 먹은 송로버섯이 들어간 요리와 치즈 농장에서 맛 본 치즈가 인상적이었다. 피에몬테에서는 송로축제, 치즈축제, 호박축제 등 3개의 음식축제를 열어 미각의 즐거움과 전통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과시한다.

이곳에서 50여km 떨어진 곳이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의 발상지인 브라지역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이곳은 차들의 통행이 눈에 띄게 적었으며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대부분 농장에서 야채를 직접 기르거나 가축을 사육하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공동텃밭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들은 쉬는 시간과 일할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 여유롭게 쉬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바로 느리게 살자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천천히 즐기면서 음식을 먹고 잘 살자는 슬로푸드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 운동은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업체인 맥도날드가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하자 안티 패스트푸드운동의 일환으로 지난 86년 시작됐다고 한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에 대치되는 것으로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자연의 속도에 따라 만들어진 음식을 일컫는다. 고추장, 된장, 간장, 젓갈, 김치 등 우리가 예로부터 즐겨 먹던 음식을 떠올리면 된다.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 깨끗하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음식, 제값을 주고받는 공정한 음식을 만들어 섭취하자는 운동으로 신아일보가 최근 특별 연재하고 있는 '건강한 밥상 로컬푸드' 시리즈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린 정말 너무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져 있다. 패스트푸드는 효율적이지만 비만이나 심질환을 유발하는 등 부정적인 면도 많다. 맥도날드, 롯데리아, KFC 등으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는 우리 입맛을 바꿔 놓았다. 광우병도 결국은 소를 빨리 키워 상품으로 만들려는 욕심에서 나온 일이다.

우리나라에도 예로부터 패스트푸드가 있었다. 김밥이 대표적이고 튀김류, 초밥, 라면, 메밀국수 등이 그렇다.

덴푸라(튀김) 스시(초밥) 소바(메밀국수) 등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 우리나라에 정착됐다. 이런 음식들은 1657년 에도지역 대화재로 촉발됐는데 잿더미로 변한 이 지역 복구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빨리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설렁(농)탕도 그러고 보니 패스트푸드다. 농삿일에 바쁜 농민들을 위해 국밥 한 그릇 뚝딱 내놓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임금의 사랑이 듬뿍 들었었고 영양도 만점이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79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지하상가에 롯데리아 1호점이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패스트푸드 역사는 시작됐다. 당시야 자장면이 최고의 외식이었던 만큼 깔끔하고 세련된 햄버거니 감자튀김이니 하는 음식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하지만 욱일승천하던 패스트푸드의 기세도 환경 파괴, 소비자 건강 위협 등의 문제로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도 슬로푸드와 '로컬푸드(Local Food)'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10여년 전에 웰빙 열풍을 타고 한 두 명씩 이런 운동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각종 공해성 식품을 추방하자는 운동에서부터 지역에서 나는 음식을 가능한 빨리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게 하여 건강한 밥상을 차리게 하자는 로컬푸드 운동으로 까지 많은 사람들의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집에서 만든 청국장, 요구르트, 아파트단지 내 자투리땅에서 재배한 상추, 고추 등이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외래음식에 길들여져 가던 아이들에게 김치, 젓갈, 된장, 두부 등을 먹게 하는 주부들도 늘고 있다.

싱싱하고 푸근한 음식이 주는 즐거움이야말로 그 어느 인생의 낙(樂)에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몸에 맞는 로컬푸드와 슬로푸드를 먹고 천천히 생각하며 사는 여유를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