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그리는 일도 수도생활의 일부"
"만화 그리는 일도 수도생활의 일부"
  • 이은지 기자
  • 승인 2014.04.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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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가 그린 국내 첫 만화책 저자 서현승 신부
▲ 최근 출간된 만화책 '어진 목자 요한 23세 성인 교황'(가톨릭출판사)을 펴낸 서현승 신부.

"제가 만화를 그릴 때 하느님께서는 제 마음 속에 성소(聖召)를 그리셨던 것 같습니다. 직업 만화가의 꿈은 포기했지만 사제가 돼서도 만화를 그리고 있으니 결국 두 가지를 다 이룬 게 아닐까요."

최근 출간된 만화책 '어진 목자 요한 23세 성인 교황'(가톨릭출판사)을 펴낸 이는 가톨릭 신부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수사 신부로 피정 지도, 신학생 지도를 맡고 있는 서현승(46) 신부.

이 책은 그의 첫 단행본이자 국내에서 신부가 그린 첫 번째 만화책이다.

서 신부는 조만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그린 만화책도 낼 예정이다. 27일 성인으로 시성된 두 교황을 모두 만화로 펴내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한 서 신부는 자연스럽게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군것질을 참아가며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소년', '소년생활', 소년중앙', '새소년', '만화왕국' 같은 어린이잡지와 만화잡지를 사서 읽었다.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만화 그리기도 좋아했다.

서 신부는 "만화 잡지에는 만화뿐 아니라 교양상식, 과학, 문학작품도 실려 있었다"면서 "사실 학교나 교과에서 배운 것보다도 만화와 잡지에서 배운 게 더 많았다"고 말했다.

미술교육을 전공하는 교대생이었던 서 신부는 주일학교 교사 때부터 주보를 비롯한 여러 곳에 만화 연재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질을 발휘했다.

대학 때 대자보에도 만화를 그렸던 서 신부는 신학교 학위논문도 만화로 작성했다. 자신이 경험한 하느님, 예수님에 관한 내용을 65쪽에 걸쳐 그린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었다.

수도원 사제와 만화가의 삶을 같이 사는 생활이 결코 호락호락할 리는 없다.

"정말 바쁩니다. 한 달에 3주는 사제 임무를 다하고 1주일은 동료 신부님들의 양해를 얻어 만화 작업을 합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을 한다는 확신이 없으면 못합니다."

만화를 그리는 일도 수도생활의 일부이자 사제로서의 소임이라는 말이다.

독학으로 만화를 공부해 온 서 신부는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까?

"프로 만화가들을 여러 분 만나봤지만 제 그림의 구도나 기술 자체가 그리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토리 짜는 것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하하하."

서 신부는 "분량이 긴 만화는 상대적으로 쉽고, 상징과 압축, 절제가 필요한 컷 만화가 더 힘들다"면서 박재동 화백처럼 한 컷짜리 만평에 많은 메시지를 담아내는 작가들이 대단하다고 했다.

그는 "수도원 생활을 해보니 나를 비워가는 과정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 것 같다"면서 "수도 생활에서 깨달은 것을 토대로 예수님과 복음에 관한 신앙적인 내용을 알기 쉬운 만화로 전해주는 게 꿈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