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맑게 하는 작은 샘물 되기를"
"세상 맑게 하는 작은 샘물 되기를"
  • 김삼태 기자
  • 승인 2014.04.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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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화엄경 강설본 펴낸 무비스님
▲ 국내 최초의 화엄경 강설본을 펴낸 무비 스님이 지난 8일 부산 범어사에서 화엄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화엄 정신이 실현된 세상은 남을 아끼고 배려해서 갈등과 전쟁이 없습니다. 불필요한 소비와 개발도 안 합니다. 서양학자들조차 화엄경을 인류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매달 첫째 주 월요일이면 부산 범어사 인근 문수선원에는 200여 명의 스님이 전국에서 몰려든다. 무비 스님(71·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의 화엄경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무비 스님은 쉬운 강의로 정평이 나 있다. 어려운 화엄경 이론을 쉽게 척척 풀어냈다.

"지금의 인생 자체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입니다. 이 점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그릇을 엎어놓으면 물 한 방울 담기지 않습니다. 사람도,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2010년 3월 시작한 이 화엄산림대법회는 10년간 일정으로 진행된다. 조계종 역사상 단일 교육에 이렇게 많은 스님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경우는 처음이다. 무비 스님의 명성을 듣고 다른 종단의 스님들까지 강의를 들으러 온다.

무비 스님이 최근 펴낸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한국불교 사상 최초의 화엄경 강설본(해설서)이다.

지금까지는 탄허 스님과 월운 스님 그리고 무비 스님이 낸 번역본만 나왔을 뿐이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이후 3∼4 차례만 시도됐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을 만큼 엄두조차 내기 힘든 작업이다.

지난 8일 범어사 화엄전에서 만난 무비 스님은 "우주의 모든 존재가 부처님이자 신이자 하나님, 보살입니다. 함부로 사람만 주인이라 할 수 없는 것이죠. 이런 사실을 알면 모든 사람과 사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태평양처럼 넓은 화엄의 안목으로 보면 서로를 이해하고 위해줄 수밖에 없으며, 탐욕이 들어설 자리도 없다는 것이다.

1958년 범어사에서 여환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무비 스님은 월정사 탄허 스님에게서 화엄경을 배워 그 강맥(講脈)을 잇고 있다. 통도사·범어사 승가대학장, 조계종 승가대학장, 조계종 교육원장 등을 지냈다.

무비 스님은 올해부터 매년 8∼10권씩 2022년까지 80권본 '화엄경 강설'을 완간할 계획이다.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화엄 정신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현실을 생각하면 솔직히 절망스러울 때도 있죠.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맑게 하려는 작은 샘물이 있다면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엄경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