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각미술관 ‘춘심(春心)’에 빠지다
리각미술관 ‘춘심(春心)’에 빠지다
  • 대전·내포/김기룡 기자
  • 승인 2014.04.0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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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각 꽃잎 날려도 봄은 깎인다"

▲ 미술관 전경

[신아일보=충남/김기룡 기자] 봄을 맞은 늦은 3월, 필자는 천안 테조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리각 미술관을 찾았다.

리각 미술관의 대지는 화사하다 못해 눈부신 빛의 조각들로 가득했다. 그토록 냉정하게 불어오던 바람은 겨울이 끝나자 기억을 잃어버린 듯 미술관 야외 조각공원 위에 머물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끈질기게 내리쬐는 햇살 때문인지 미술관의 분위기는 따분하다 못해 늘어난 엿처럼 지루하기까지 했다. 영혼마저 끌고 들어갈 것 같은 봄의 나른함이 도처에서 손을 내밀었다. 나른함에 정신을 뺏길까 서둘러 커피를 들고 미술관 카페의 테라스로 나왔다. 머리 위로는 햇살이 쏟아지고 아래에서는 달콤한 커피향이 올랐다. 저 멀리에는 아득한 태조산이 두 팔을 벌려 우리를 감쌌고 그 공간은 고요의 미덕으로 넘쳐났다.

적군에 포위당한 병사처럼 몸과 마음은 무장해제를 당한다. 따스한 봄의 기운이 가득한 날, 하늘과 땅이 주는 아찔함은 어쩔 도리가 없다. 배불리 먹고 늘어진 팔자 좋은 개처럼, 육체적 감각이 쾌락의 근본에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늘어짐의 미학이었다. 여기에 봄의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겨울을 견디고 찾아온 한줌 햇살과 향기 앞에 우리는 동물적으로 행복할 수밖에 없다.

하늘과 이어진 입구의 미학

▲ 리각미술관을 오르는 계단

누구라도 리각 미술관의 입구에 도달하면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태조산 자락 중턱에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작고 아담한 언덕에 시야가 막힌다. 벽면을 따라 시야를 높이면 언덕의 능선이 보이며 그곳에 몇 점의 작품이 고개를 내밀고 오는 이를 반긴다. 이들 뒤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하늘이 아득히 펼쳐있다. 순간 어쩔 수 없이 시야를 허공 속에 뺏기게 된다. 채워지지 않은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때문인지 허공에 던져진 시선은 갈 곳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결국 언덕 능선과 하늘이 만나는 전선을 따라 옆으로 미끄러진다. 그제야 얼마나 내 삶과 하늘이 단절돼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도시의 마천루는 인간을 유사 이래 하늘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게 했으나, 이제 우리의 인식은 하늘의 깊이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허탈함이 밀려온다.

입구에서 미술관까지의 길은 곡선으로 이어져 있다. 굽이치는 길의 형태는 보는 이의 심상에 개입한다. 곡선의 길에는 직선의 효용과 속도의 미학은 소멸한다. 성실한 걸음으로 올라야만 미술관에 도달할 수 있다. 정겨운 것은 내가 한 발 오르면 언덕 너머의 하늘도 한 계단 내려와 준다는 사실이다. 차로 내달릴 때는 감각하지 못할 정도의 작은 변화다. 육체와 자연이 맺은 속도의 윤리학이다.

미술관 측의 치밀한 계산일지 모르겠으나, 입구부터 야외 조각공원까지 미술관의 배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는 행위만으로 자신의 낮음을 확인할 수 있고 직선을 거둬야만 주위를 면밀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삶은 포착되지 않는 순간

▲ 미술관 내부

리각 미술관의 작품들은 평화로운 풍경과 달리 만만치 않다. 맞선에 나선 상대처럼 순박한 표정이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모호함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미술관 야외 조각공원에는 조각가 이종각 선생의 작품들이 세워져 있다. 작품들은 저마다 확산과 응축, 변형 등의 이름을 달고 있다.

작품 대부분은 굴곡진 육면체의 검은 덩어리들이 다른 덩어리와 원통으로 이어진 형태다. 어떤 육면체는 원통에 의지해 하늘에 떠 있거나 다른 덩어리에 기대어 서 있다. 야외 조각 공원의 단순하고 넉넉한 공간 때문인지 이들 작품은 각각 고립된 섬처럼 다가온다. 공원 중심부에는 수정처럼 매끄럽고 윤기 나는 타원형의 검은 물체가 눈동자처럼 박혀있다. 언덕 끝 무렵에는 ‘응축형 변주’라는 이름을 가진 커다란 원판이 나이테 같은 무늬를 몸에 새기고 우뚝 서 있다.

예술에 대한 조예가 없는 미천한 이해로는 해석 불가의 영역이었다. 포착되지 않는 선과 면, 덩어리와 공간이 공원 구석구석에 포진하며 보는 이의 심상을 흔들었다. 해석되지 않는 작품 앞에 있자니 길 잃은 사람과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직관과 의혹, 육감과 모호한 공상이 뒤섞였다. 그러나 불쾌감은 없었다. 오히려 작품을 바라보자니, 삶의 매 순간이 이들과 같았음을 공감하게 된다. 당혹스러우리만치 포착하기 어려운 기분과 순간들,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혼란의 일상들. 순간 이들 작품이 위로가 됐다. 삶은 단순명료한 판단만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며 모호함을 본질로 하고 있으니, 혼돈 속에 있더라도 힘을 내야 한다고 작품은 말해주고 있었다.

잊지 못할 카페M 테라스의 봄날

▲ 카폐 전경

햇빛은 찬란했으나 여전히 피부에 닿는 바람은 냉혹했다. 봄은 눈 속에 녹아들었으나, 몸은 따스한 차를 필요로 했다. 무엇보다 빛이 산란하는 날 리각 미술관에 오면 카페M의 테라스에서 커피를 꼭 마셔야 한다. 잃어버린 몸의 감각을 세포구석구석까지 일깨워준다.

▲ 카폐 내부

가장 눈부신 정오의 테라스는 축복이다. 이곳에서 따스한 차 한 잔을 머물면, 혀끝은 육체가 아닌 가슴에 속하게 된다. 입안에 녹아드는 따스함과 향기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모든 입맞춤을 기억해 낸다. 온몸을 감싸 안은 태양은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서 낮잠을 잤던, 이제는 사라진 낡은 평상에 얽힌 파노라마와 같은 추억을 끄집어낸다. 잠시 상념에 젖어 있자니, 카페 구석에 자리한 한 무리의 중년 여인들의 수다에 정신이 돌아온다. 일상의 권태를 쏟아내는 그들의 언어들이 허공을 맴돌다 덧없이 사라진다.

한차례 바람이 불자 풀잎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문득 “한 조각 꽃잎이 날려도 봄빛이 줄어든다”는 두보의 말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은 덧없고, 덧없기에 사랑스럽다. 당신의 존재도 봄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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