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걸인에게 돈을 줄때 눈을 마주쳤습니까? 그들의 손을 한번이라도 맞잡아본적이 있나요?
"당신은 걸인에게 돈을 줄때 눈을 마주쳤습니까? 그들의 손을 한번이라도 맞잡아본적이 있나요?
  • 주장환 취재국장
  • 승인 2014.04.01 19: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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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프란치스코 교황, 순교자의 땅에 입 맞추다

 
분단의 땅에 훈훈한 봄바람 불어넣는 방한
마피아와 한판승부 - 사제 앞 고해성사도

[글=주장환 취재국장]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남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나는 성심을 다해 이것(세족)을 합니다. 사제로서, 주교로서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하겠습니다."
-2013년 3월28일 프란치스코 교황, 소년원생들의 발을 씻겨주면서.

지난달 28일,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참회 전례. 프란치스코 교황이 들어서자 사람들의 눈은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그러던 잠시, 모인 사람들 사이에 작은 웅성임이 일었다. 자신이 행한 잘못을 회개하려 모였던 사람들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교황이 거침없이 걸어가더니 한 사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고백했기 때문이다. 교황 앞에서 마음 속 응어리를 토해내려던 평신도들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자신이 지은 죄를 고해하는 교황의 모습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3월28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사제 앞에서 고해했다. 그의 고해는 자신의 죄를 고백해 용서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사진=AP연합뉴스)

전통적으로 교황은 1년에 한 번 예수의 재판과 처형을 기리는 날인 성금요일 오전에 사제들과 함께 평신도들의 고해를 듣는다. 그러나 이날 교황은 자신이 먼저 고해를 해버린 것이다. 교황의 고해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행동으로 다른 평신도들도 마음의 부담없이 자신의 잘못을 고해할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은 죄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의 마음속을 잠시 스쳐지나갔던,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불온한 어떤 생각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이전에도 교황은 공개적으로 고해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로마교구 사제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교황은 준비한 원고를 덮으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 시절 한 신부 장례식에서의 추억담을 들려줬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리스티 신부님은 고해사제로 유명했을 뿐 아니라 신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런 신부님의 관에 헌화하다 신부님의 손에 쥐어진 묵주를 보았지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나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 손에 있는 묵주를 가져왔지요. 그 순간 신부님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백을 했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반만이라도 내게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교황은 그날 이후 그 묵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데, 특히 누군가에 대해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묵주가 있는 주머니 쪽에 손을 대면서 용서의 마음을 회복시켜 달라고 빈다고 한다. 그는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제 실수입니다. 이런저런 것이 제 단점입니다. 시간이 또 인생이 저에게 가르쳐준 것들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의 공식 설립년도는 1784년이다. 올해로 230년이 된 셈인데,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프랑스 신부 그라몽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와 지금의 명동성당 부근 명례방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를 가지기 시작했던 해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가톨릭은 피의 희생 없이는 결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우리는 그것을 일컬어 ‘박해(迫害)’라 부른다. 그 사전적 의미는 ‘못살게 굴어 해롭게 함’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 풀이는 천주교 박해에 대한 뜻으로서는 절절한 맛이 나지 않는다. ‘참해(慘害:참혹하게 해를 겪다)’ 정도는 돼야하지 않겠나 싶다.

김범우의 집 명례방에서 교리 연구와 주일 미사를 보던 이들을 잡아들인 ‘을사추조적발사건’(1785년)과 조상제사를 거부했던 윤지충과 권상연이 전주에서 순교한 ‘신해박해’(1791년), 주문모 신부의 체포령에서 발단된 ‘을묘박해’(1795년), 순조 즉위와 더불어 시작된 ‘신유박해’(1801년)와 헌종 때 ‘기해박해’(1839년),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병오박해(1846년)’등으로 순교의 피는 금수강산을 해당화처럼 붉게 물들였다. 이때까지 천주교는 전통 주자학 시스템의 갈등과 충돌하면서 이어져 왔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을 결정한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가 1791년 순교한 전북 전주시 전도성당에 세워진 동상. (사진=AP연합뉴스)

■ 한국 종교 통합 기대

이 땅의 프로테스탄티즘은 헨리 아펜젤러가 1885년 10월11일에 정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한국인과 함께 예배를 시작함으로써 새로운 문을 연다. 이는 정동교회의 뿌리가 되며 한국 감리교의 배태가 된다. 이어서 1887년 9월27일, 정동에 있는 한 한옥에서 14명의 한국인과 언더우드 목사, 로스 목사가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맥을 이어간다. 바로 새문안교회다.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는 황해도 장연군 송천리의 ‘소래교회’(1884년 혹은 1885년 설립, 두 가지 설이 있음)로 자생적 토착교회라 할 수 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바이블(성경)을 기본 경전으로 하는 같은 뿌리에 나온 종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어서만 봐도 역사적으로 상호간 갈등과 충돌이 없지 않았고, 또한 그러한 갈등 해소를 위한 지속적 노력이 있어왔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번 교황의 방한을 통해 양자가 더욱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 관계를 모색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최근 우리나라의 종교관련 조사에서 신도수가 가장 많은 불교와 개신교를 제치고 종교에 대한 호감도 면에서는 가톨릭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세속 사제’들도 눈에 띄지만 역사와 전통, 과거에 대한 반성, 평화에의 지향, 그리고 종교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자는 가톨릭이 국민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가톨릭계는 목하 분주하다. 오는 8월로 예정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국가란 권력과 법률의 매개양식에 의해 통합되는 인간의 공동체다. 즉 우리는 다른 매개양식에 의하여 통합되는 공동체를 국가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공동의 자본을 사용하는 인간조직은 기업이라 하고, 종교적인 도그마에 의해 형성되는 공동체는 종교단체라 한다.

이러한 국가에 대한 개념에 따르면, 나름대로의 외형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바티칸 시국(市國)을 국가라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리고 설사 국가라 할지라도 그 존재감은 너무도 미미하여 국가로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0.44㎢의 좁은 면적에 900명이 채 안 되는 인구, 국가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작지만 그 영향력에서 만큼은 세계의 여느 강대국에 못지않은 나라가 바로 바티칸 시국이다. 이 시국을 이끌어 가는 수반, 공식직함으로는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황이라 부르는 바로 그 분이 우리나라를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것이다.

▲ 평신도들과 손 마주잡는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의 '산타마리오 델 오라치오네'(기도하는 성모마리아) 교구 성당에서 평신도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 낮은 자세의 교황

교황의 위대함과 영향력은 바티칸 시국이라는 국가의 수반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인구의 1/6에 해당하는 12억의 사람들이 믿는 가톨릭이라는 종교의 최고 지도자로서이다.

종교적인 신념은 다른 사상이나 이념에 비해 그 실행력이나 결속력에서 훨씬 강력하다. 가톨릭 신자의 수가 비록 세계 최고는 아니라 하더라도, 단일체계를 가진 종교는 가톨릭이 유일하다. 종교 전체를 놓고 볼 때에는 가톨릭의 교세가 개신교나 불교에 못 미친다 할지라도 개별 교단의 차원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다.

단일교단을 기준으로 하면 가톨릭은 모든 종교의 교단들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12억명의 신자들을 이끌어 가는 종교지도자는 교황 이외에는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이 바로 교황의 위대함이요 영향력이다. 그 중심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한센병 환자의 이마에 키스를 해 주고, 1219년 십자군 원정대를 따라 이집트에 가서 이슬람 최고 지도자를 만나기도 했던 역사적 인물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프란치스코 교황의 옛 이름)가 교황이 되면서 그 이름을 빌었다.

세계인들이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황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본받고자 하는 이유는 모두(冒頭)에서 보여준 바와 같은 교황의 순수함과 낮은 자세로 봉사하려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다가 불의를 타파하려는 의지 또한 프란치스코 성인 못지않다.

얼마 전 교황은 역사상 처음으로 반마피아 단체의 공개 추모식에 참석해 마피아와의 '성전'을 선언하면서, "피 묻은 돈은 천국에 들일 수 없다"고 했다. 바티칸 은행 이야기다.

 ▲ 교황의 문장

■ 神의 은행 과감히 개혁

‘신(神)의 은행’이라 불리는 이 은행은 이탈리아 정치인이나 마피아 같은 조직범죄단과의 연루설이 나돌았다. 영화 '대부 3'에서는, 뉴욕 마피아의 보스가 유럽 모 은행의 운영권을 거머쥐기 위해 교황청 간부들과 접촉에 나서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해외 자산 관리 업무를 맡았던 고위 성직자가 '돈세탁' 혐의로 스위스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교황은 투명성 확보와 구조 개선을 목표로 '삼중(三重)의 개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바티칸 은행은 설립 이후 71년 만에 처음으로 연차보고서를 공개하는 등 발 빠른 개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바티칸까지 찾아가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불법 이민자로 이민보호소에 수감된 채 해외 추방될 처지에 놓인 아빠를 도와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던 한 미국 소녀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 교황이 오바마 미국대통령을 만나 도움을 요청, 풀려나게 해줬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로마 성베드로 광장에서 5만 군중을 향해 강론하던 중 신경섬유종으로 얼굴이 온통 혹으로 덮여 있는 한 남자를 끌어안고 이마에 키스하며 축복의 기도를 해 주었다. 그 남자는 "교황에게 안긴 1분 동안에 천국을 경험했다"고 했다.

자신의 생일날에는 노숙자 3명을 초대해 아침 식사를 같이 했고, 밤에는 가끔 평사제복을 입고 교황청을 빠져나가 노숙자들을 돌봐 왔다. 그는 또 소형차를 타고, 어린아이들과 셀카를 찍으며 즐거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