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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명현(己卯名賢), 문간공(文簡公) 김정(金淨)
기묘명현(己卯名賢), 문간공(文簡公) 김정(金淨)
  • 황미숙
  • 승인 2014.03.2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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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숙의 문명학당 <83>
▲ 김정(金淨) 〈새〉31.5×10.7㎝

<일편단심의 충정, 쑥밭에 파묻혔고(烱丹衷兮埋草菜),
당당한 장부의 뜻 중도에 꺽였어라(堂堂壯志兮中道沖).>

김정(金淨, 1482, 성종13~1520, 중종15)의 자는 원충(元沖)이며, 호는 충암(沖庵), 본관은 경주(慶州)로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이다.

금산(錦山)으로 귀양 갔다가 진도(珍島)로 옮기고, 경진년에 다시 국문을 받고 제주(濟州)에 안치되었는데, 신사년(1521)에 망명한 사실을 추후로 논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으니, 나이 36세였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정묘년에 문과에 장원 급제했다. 저서로는 《충암집(沖菴集)》,《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 등이 있고, 〈이조화명도(二鳥和鳴圖)〉,〈영모절지도(翎毛折枝圖)〉 등 꽃, 새, 짐승의 그림이 있다. 인종(仁宗)이 관직을 회복시킬 것을 명하고, 선조 때 문정(文貞)이란 시호를 내렸다. 뒤에 시호를 문간(文簡)이라고 고쳤다.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김정전(金淨傳)〉에 의하면, 기묘년 12월에 심정(沈貞)ㆍ남곤(南袞)이 홍경주(洪景舟)와 화기(禍機)를 얽어 대내(大內, 임금)를 겁나게 한 뒤에, 홍경주가 언서(諺書)를 받아 비밀 교지라고 하면서 배척당했던 재상을 가만히 부추겼다고 한다.

이때에 옥에 갇힌 이들이 모두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 하며, 함께 술을 마시고 영결(永訣)하였는데, 김정이 옥중에서 의복을 찢어서 거기에다 소장을 써서 올렸다고 한다.

“신들은 모두 미치고 어리석은 자질로서, 성명(聖明)을 만나 경악(經幄)에 출입하면서 경광(耿光 임금의 위의)에 가까이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 임금은 장차 성군이 되리라는 것만 믿고 충정을 다했습니다. 뭇사람의 뜻을 거슬렸으나 다만 임금 있는 줄만 알았을 뿐, 딴것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임금이 요순 같은 착한 임금이 되기를 바랐을 뿐, 어찌 자신을 위한 꾀를 도모하였겠습니까. 하늘의 해가 밝게 비추고 있으니, 맹세코 딴 사심이 없었습니다. 신들의 죄는 만 번 죽어도 마땅합니다마는, 다만 사류의 화(禍)를 한번 개시하게 되면 국가의 명맥에 관계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천문(天門, 임금 계신 궁문)이 막혀 심회를 계달(啓達)할 길이 없으나, 말없이 길이 하직함은 실로 차마 하지 못할 바입니다. 다행히 친히 물으시면 만 번 죽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뜻은 넘치고 말은 슬퍼서 말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였다고 한다. 혹은 김구가 지었다 한다.

그리고 신사년 겨울에 도망했다는 죄목으로써 추론하여 자진(自盡, 자살)하라는 명이 내렸다. 공이 왕명을 받고 얼굴빛도 변치 아니하였다. 술을 가져오게 하여 통쾌하게 마신 다음, 목사(牧使) 이운(李耘)의 손을 잡고 시사(時事)를 묻고, 형과 아우에게 편지를 보내어 노모를 잘 봉양하도록 부탁하고, 또 절명사(絶命辭)를 읊어서 자신의 뜻을 보였다.

절명사에, "절지에 와 외로운 넋이 되는구나(投絶國兮作孤魂). 멀리 어머니를 두고 가니 천륜도 어기나니(遺慈母兮隔天倫), 이 세상 두고 이 목숨 끊어지면(遭斯世兮隕余身), 저 세상 가서 역대 상감의 문지기가 되리로다.(乘雲氣兮歷帝?), 또한 굴원을 따라 높게 소요하련만(從屈原兮高逍遙), 기나긴 어둔 밤은 언제나 아침이 되랴(長夜暝兮何時朝). 일편단심의 충정, 쑥밭에 파묻혔고(烱丹衷兮埋草菜), 당당한 장부의 뜻 중도에 꺽였어라(堂堂壯志兮中道?). 오호라, 천추만세가 내 슬픔을 알리라.(嗚呼千秋萬世兮應我哀).”라고 하였다. 그때 나이는 36세였다.

《기재잡기(寄齋雜記)》〈역대 조정의 옛 이야기〉에서 충암(沖庵) 김정(金淨)이 형조 판서로서 일찍이 승지 윤자임(尹自任)을 방문했었는데, 그의 장인이 나와서 읍하고 말하기를, “내 사위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잠깐 들어오라.” 하고, 바로 맞아 올렸다.

앉은 다음에 윤자임의 장인 이야기가 형조 공사(公事)에 언급하여 무슨 청탁이 있는 듯 한 기색이었으므로 김정이 바로 정색하고 한동안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는데 윤자임이 돌아오자 윤자임의 장인이 사과하고 들어가 평생토록 그 일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윤자임의 장인이 낭패를 당함이 마땅한 듯하다.

판서 송인수(宋麟壽, 1487~1547)가 지은 김정의〈행장(行狀)〉에, “공은 천성이 장중(莊重)하여 말과 웃음이 적었다. 문장은 정묘(精妙)하고 심오하여 멀리 서한(西漢) 체재를 따랐고, 시는 성당체(盛唐體)를 배웠다. 경전(經傳)에 침잠(沈潛)하고 주야로 꿇어앉아서 공경하는 것을 익히고 정(靜)을 주장하는 학문을 했다. 의견을 말하고 일을 행할 때는 반드시 성현(聖賢)을 표준으로 했다. 살림을 돌보지 않았고 청탁은 통하지 않았다. 추종하는 자를 문안에 들이지 않았고 녹봉은 친척에게 고루 나눠줬다. 제주의 풍속이 잡신을 숭상하고 예제(禮制)를 모르므로, 공이 초상(初喪)·장사(葬事)·제사(祭祀)에 대한 의식을 기술하여 백성을 지도하니, 풍속이 크게 변했다”고 기록했다.

벌써 선거법을 운운하며 이모저모로 분분하다. 어느새 또 선거철이 다가온다. ‘우리 시(市)를 위해’ 또는 무엇을 위해서라며 목소리에 힘주는 때가 되었다.

4년 전에도 그랬고 얼마 전에도 똑 같이 힘주어 말했다. 공약을 지킨다고 애쓴다. 누구를 위해 공약을 지키는지 모를 일이다. 무엇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이 바뀌어서 모양은 다를지 모르나 내용은 같은 정책이 재탕되고 있다. 그래도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리고 올해도 우리는 당당한 지도자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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