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머니와 함께 울산 현대조선소 앞에서 밥집 운영
(2) 어머니와 함께 울산 현대조선소 앞에서 밥집 운영
  • 신아일보
  • 승인 2014.02.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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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떼먹는 직원 이름써서 목에 걸고 출근길 시위

[신아일보=유퉁의 울퉁불퉁 인생]

 

1997년 3월 IMF 사태가 터지기 딱 9개월 전의 일이다. 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는 팬의 한 사람이 양수리 집으로 찾아왔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으나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는 다짜고짜 나의 팔을 잡으며 도와달라고 말했다.

난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갔다. 그는 장애자였다. 그에게는 형이 한분 있었는데 그에게 식당을 한번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의를 해와 두사람은 의기투합해 양평군 문호리 시골길 옆에 식당을 개업하였다고 한다. 그 집은 특별히 정해놓은 메뉴가 없었고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라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안가 빚이 늘어나 500만원 가까이 되자 형은 동생의 말을 믿고 잘못했다고 원망하기 시작했고 장사 안되는 것이 꼭 자기 탓인양 여겨져 하루 하루가 너무나 힘들다고 했다. 그는 눈물을 그렁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의리의 사나이라는 유퉁씨를 만나 보면 뭔가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찾아 왔습니다’

난 뒷머리가 가려워지는 것 같았다.

참내 내가 식당에 대해 뭐안다꼬.

미치고 환장하겠네

‘보소! 내가 뭐안다꼬 나한테 찾아 왔는교.’ 그러면서도 내 머리는 무슨 아이디어를 찾아 굴러가고 있었다. 난 원래 이런 놈이다. 누가 찾아와 인간적으로 호소하면 마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다.

성질 급한 나는 그 자리서 그에게 도와주겟다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알았소. 퍼덕 일어나소. 그 식당이 어디에 있는교. 지금 퍼덕 가봅시다’

J씨의 형님과 형수님이 운영하는 그 식당을 찾았다. 한숨을 푹푹쉬며 앉아 있던 두 사람은 반갑게 맞았다. 난 아무 음식이나 해보라고 했다. 잠시후 음식이 나왔다. 찌개였는데 먹어보니 음식 맛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맛이 괜찬네예. 잘만하면 손님 끄는데는 문제없겠는데예’

‘하이고 고맙네요. 그나저나 손님이 안드니 맨날 손가락만 빨수도 없고...무슨 좋은 방안이 없겠습니까?’

난 제법 아는 척 하며 말했다.

‘음식솜씨야 있다케도 장사 경험이 없고 메뉴의 선택이 잘못된 것 같십더. 그라고 너무 한적한 곳에 자리 잡았어예. 이런곳이라먼 장사에 도가 튼 사람이라도 용빼는 재주 없심더’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분들에게 지난 날 내 경험담을 이야기 했다.

난 사실 장사엔 좀 자신이 있다. 어머니는 밥집부터 시작해 여러 식당을 하셨으며 나는 고등학교 때 벌써 포장마차를 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또 부산시내를 돌면서 얼음이 필요한 곳에는 얼음을 배달하기도 했다.

어머니와 함께 울산에 내려가 현대조선소 앞에서 밥집을 하기도 했다. 그 때 난 유명했다. 그 곳에는 조선소 직원들이 자주 와서 밥을 먹고 가곤 했는데 종종 밥값을 떼먹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경우 난 악착같이 찾아가 밥값을 받아냈다.

그 중에는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고 하는 아주 악랄한 놈이 있기 마련이었다. 난 그럴때면 아침 출근시간에 회사 앞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분지같은 두꺼운 종이에 ‘총무과 XXX 밥먹고 밥값 안냈다’라고 쓴 걸 목에 걸고 서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킥킥 거리는가 하면 멀뚱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여직원들은 배를 잡고 깔깔 대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그러면 10에 9은 다 돈을 가지고왔다. 그래도 안 내는 놈이 있으면 나는 회사로 들어가 사원식당에서 그 사람 이름을 대고 밥을 먹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