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필자는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전 (前)이라크 대통령의 장남 우다이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우다이는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우다이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많지만 필자는 그에게서 수줍음을 타는 내성적 성격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우다이는 이라크 스포츠 진흥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라크 스포츠진흥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도중 필자가 설형문자와 바벨탑 등에 대해 관심을 표하자 갑자기 자부심에 찬 어조로 자신의 부친이 고대 바빌론의 전설적 영웅 느부갓네살 왕의 유적 복원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러면서 필자가 유학했던 ‘문화의 나라’ 프랑스의 문화유산보호정책에 관해 각별한 관심과 흥미를 보이며 이것저것 물었다.
필자는 드골 집권기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의 문화유산보호법제정과 당시 미테랑 정부와 자크 랑 장관의 노력으로 매년 문화부 예산이 증액되고 있다는 사실 등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이라크인들은 인류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유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태까지 방치해 놓았었는데 86년부터 본격적인 복구사업을 하고 있다면서, 자국의 문화유산보호정책에 대해 매우 자긍심어린 태도를 보였다.
비록 사담 후세인의 유적복구사업이 역사적으로 유대왕국을 제압하고 시리아, 요르단, 쿠웨이트 지역을 장악했던 느부갓네살 왕과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중동지역의 맹주로 군림하려는 야망을 가진 자신을 상징적으로 동일시하여 상승효과를 얻으려는 불순(?)하고 계산된 의도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노력으로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되살아 났음은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도 수많은 외적의 침입 또는 내란에 의해 귀중한 역사적 유산들이 파괴되고 소실된 바 있다. 그렇게 이미 사라진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현존하는 우리의 문화재라도 제대로 보존하여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뿐만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것은 우리만의 문화재일 뿐만 아니라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의 당위성과 전쟁의 개연성이 항상 대립하며 불안정하게 공존하는 국제사회에서 무력충돌시를 대비하여 인류의 문화유산인 각국의 문화재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하는 협약 등에 가입해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국방력, 기술력, 경제력이 없이는 외침으로부터 자국의 국권은 물론 문화유산 또한 제대로 수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것들을 강화해나가는 국가적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문화유산보호를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과 자국의 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제대로 보호하여 자손에게 온전하게 전수하려는 성숙된 국민 의식과 의지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숭례문 부실 복원으로 시작된 파장이 문화재 전 분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와 연관돼 대두된 ‘문화재 보수 기술자 자격증 대여 논란’은 순식간에 문화재계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국민들에게 참을수 없는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20여년 전 우다이가 대한민국이 아닌 프랑스의 문화유산보호정책에 관심을 표명했을 때 슬며시 느꼈던 수치심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다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과 문화재 보수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보다 성숙된 문화 국민이 되는 길을 열어 나가자.
/조명애 EU특파원, 불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