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해 유기농 농산물로 인류건강 지킬 것”
“무공해 유기농 농산물로 인류건강 지킬 것”
  • 박상진 기자
  • 승인 2014.02.09 14:07
  • 댓글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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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돌나라 한농복구회 설립자 박명호 회장, 병든 땅·병든 몸·병든 마음 회복운동 전개
▲ 사)돌나라 한농복구회 창립자 석선 박명호 선생.

유기농업 정착 기여 유공 대통령상 수상
폭력·탈선 없는 대안학교도 설립 운영

[신아일보=박상진 기자] 병든 땅, 병든 몸, 병든 마음을 회복하는 운동을 통해 환경과 사람, 인류를 살리는 지구환경 회복운동을 꿋꿋하게 펼치는 단체가 있다. 바로 ‘사단법인 돌나라 한농복구회(이하 돌나라 한농)’다.

한번 품은 뜻이 돌같이 변질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품고 있는 ‘돌나라 한농’은 유기농을 통해 한국 농촌을 복구하고 지구환경을 회복하기 위해 지난 1994년 설립됐다.

설립 이후 유기농을 실천·보급하면서 한국 농촌을 살리는 중심적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제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을 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

이 단체의 설립자가 석선(石仙) 박명호 선생(71)이다. 돌나라 한농을 만들고 키우기까지 그의 인생역정을 알아봤다.

-신념과 궁핍 사이

석선 선생은 충남 보령이 고향이다. 성주산 자락의 한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5살에 천자문을 뗄 정도로 머리가 명석하고, 똑똑했지만 중학교를 마친 후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했다. 선생의 어머니가 유종을 앓아 갓난아기 때 모유를 먹지 못해서인지 학교에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던 중학교 3학년 때 교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간절한 기도로 건강을 회복했지만, 유교집안의 엄격한 아버지가 기독교 신앙을 거세게 반대하자 18세에 가출을 하게 된다. 26세까지 네 차례의 가출을 할 만큼 아버지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석선 선생은 자신의 신앙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는 커녕 명절과 생신 때마다 용돈과 선물을 보내드렸고, 굽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아버지의 마음도 어느새 봄눈 녹듯 녹아 성경책 선물을 기쁘게 받게 되셨다고 한다.

석선 선생은 카투사(Korean Augmentation Troops to United States Army)에서 군생활을 했다. 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생활하는 카투사의 특성상 여러 가지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한국인의 자존심이 남달랐던 그는 군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해결사 역할을 했다.

선생은 제대 후 생활을 위해 온갖 일을 경험하게 된다. 군고구마 장사부터 보세품 헌 스웨터 판매, 냉차장사, 구두수선, 날품팔이, 여름철 민박, 성서판매 등 어렵지 않은 일이 없었다.

결혼한 후에도 그의 궁핍하고 피곤한 생활은 계속됐다. 넉넉한 집에서 자란 그가 집에서 나와 생각지도 못했던 공사판 막노동으로 날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했던 게 바로 이 무렵의 일이다. 26세에 결혼하고 이후 7년간은 견디기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고 그는 기억한다.

 

▲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돌나라한농교육관의 모습.

-돌나라 편견과 음해

석선 선생은 지난 1984년 경북 상주시 화북면에 터를 잡는다. 마을의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매년 밀가루와 쌀, 국수 등을 지원했다. 내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웃과 나누었다. 그러면서 돌나라 한농도 뿌리를 튼실히 내리게 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돌나라 한농의 성장과 함께 선생에 대한 음해와 시기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방송을 통해 돌나라 한농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전파를 탔을 때는 시련도 적지 않았다.

2012년 12월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서 ‘탐욕인가 희생인가-창기십자가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돌나라 한농과 석선 선생 관련 내용이 방송됐다.

21년 동안 돌나라 한농의 회원이었던 A모씨가 회원을 탈퇴한 후 방송국에 제보한 것이 발단이 됐다.

돌나라한농예능학교 교장으로 있던 A씨가 사기를 일삼아 네 차례의 파직 권고에도 악행을 계속해 결국 퇴출됐고, 이에 대한 앙심으로 방송국에 보복성 허위제보를 했던 것.

앞서 A씨는 석선 선생을 ‘강간 및 강간치상’으로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이어진 검찰수사와 검찰시민위원회의 조사결과 무혐의 결론이 내려졌다. A씨의 잇따른 재정신청에도 결국 지난해 ‘혐의없음’으로 사건이 기각됐다.

돌나라 한농과 석선 선생을 둘러싼 음해와 모략은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법원은 모든 사건에 대해 혐의가 없음을 선고했다.

 

▲ 石仙 선생은 독립군의 후손이며 우리 동포인 고려인 돕기에 나서 현지 고려인들에게 우리문화 회복 및 보급 운동을 펼쳤다.

▲ 필리핀에서도 모범영농조합으로 최우수 대통령상을 수상한 돌나라 필리핀 지부의 모습.

-한국을 넘어 세계로

갖은 음해와 모략 속에서도 선생은 돌나라 한농을 흔들림 없이 키워냈다.

거의 맨손으로 이 단체를 출범시킨 선생은 현재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필리핀, 중앙아시아, 케냐, 캐나다, 브라질 등 전 세계 10여개국에 돌나라 영농단체를 운영할 만큼 탄탄하게 다져왔다.

한국에는 경북 울진, 청송 등 전국 10여 곳에 100만평이 넘는 무공해 농업단지를 조성해 안전한 국민 먹거리 보급과 농업 활성화에 기여해 왔고, 이를 해외 곳곳에 확장했다. 특히 브라질에는 4000만평의 대규모 농장을 만들어 해외 영농기반을 다졌다.

이같이 왕성한 농촌복구운동을 펼친 결과 세 차례에 걸쳐 유기농업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활동은 농촌운동, 먹거리운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폭력과 탈선이 없는 대안학교 ‘돌나라 한농예능학교’를 설립해 청소년문제와 교육에 관심을 두는가 하면, 부모효도를 근본으로 하는 ‘부모효도하기 운동본부’를 세워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또 타국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독립군 후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고려인돕기운동본부’를 설립해 왕성한 후원활동을 진행했다.

 

▲ 드넓은 브라질 콩 밭에서 돌나라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하는 石仙 선생.

 

▲ 石仙 선생은 먼나라 아프리카 케냐에까지 유기농 농장과 수준높은 인성교육을 가르치는 학교를 설립하였다.

-끝나지 않은 석선의 꿈

一日淸閑一日仙(일일청한일일선).

“하루를 맑고 깨끗하게 살면 그날의 신선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올해로 71세를 맞은 석선 선생의 좌우명과도 같은 말이다. 그 말속에 무소유(無所有)와 나눔의 철학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같은 철학과 믿음으로 평생을 일궈온 돌나라 한농이지만, 석선 선생의 꿈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가난이 없는 새 세상, 병이 없는 새 세상, 싸움이 없는 새 세상, 불행이 없는 행복한 새 세상, 범죄없는 새 세상, 꿈이 이루어지는 새 세상, 죽음이 없는 새 세상이 그것이다.

돌나라 한농과 석선 박명호 선생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