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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姜氏)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姜氏)
  • 황미숙
  • 승인 2014.01.2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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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버들잎을 섞었는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1356~ 1396) 강씨는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으로 고려 말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강윤성(康允成)의 딸이다.

능호는 정릉(貞陵)으로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다. 조선의 개국으로 왕비가 되었고 정도전(鄭道傳)과 결탁하여 태조의 전 부인 한씨(韓氏)의 소생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아들 방석(芳碩)을 세자로 세웠다. 그러나 그녀가 사망하자 한씨 소생인 방원(芳遠)과 그 형제가 정변을 일으켜 방석과 측근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았다.

태조가 승하한 이듬해인 태종 기축년(1409, 태종9)에 도성에 무덤을 두는 일이 고금에 없다는 이유로 양주군(楊州郡) 남사아리(南沙阿里)로 이장하여 정자각(丁字閣)을 헐고 능의 석물(石物)을 실어다 돌다리를 만들었으며, 왕비의 제례에서 제외시켜 서모(庶母)의 예로 제사를 지내게 했다.

『다산시문집』「신덕기적비첩(神德紀蹟碑帖)에 발함」에 의하면 정약용이 곡산 부사(谷山府使)로 있을 적에 향인(鄕人)의 말을 들어 보니, 신덕왕후 강씨의 옛 집터가 용연(龍淵) 위, 용봉(龍峯) 아래에 있는데, 돌기둥이 우뚝 서 있다고 하므로, 가 보았더니 사실이었다. 야사(野史)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옛날 우리 태조(太祖)께서 여름철에 말을 달려 계곡을 지나다가 매우 갈증이 나므로 개울 에서 빨래하는 한 여자를 보고 물을 떠오게 하였다. 그 여자는 일어나서 즉시 물을 떠오는 데 버들잎 한 움큼을 물에 띄워가지고 바쳤다. 태조가 노하여 ‘왜 버들잎을 섞었는가?’ 하니, 그 여자가 ‘더울 적에 물을 급하게 마시면 몸에 해로우므로, 그것을 불면서 천천히 마시게 하려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태조가 그를 매우 기특하게 여겨 말에 태워가지고 함께 돌아왔는데, 그가 바로 신덕왕후였다.”

기미년(1799, 정조 23) 여름에 내가[다산] 곡산에서 돌아왔는데, 마침 청연(淸燕)을 맞이하여 그 사실을 아뢰었다. 그 후 8월 16일이 마침 신덕왕후의 기일(忌日)이었다. 그러자 상(上)께서 감회(感懷)가 있어, 용연(龍淵)의 돌기둥 옆에 비각(碑閣)을 짓고 비를 세워서 그 사적(事蹟)을 기록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 탑본이다.

이 일을 할 때에 내가 자주 자문을 받고 그 한두 가지를 말씀드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비가 이미 고적(古跡)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를 꾸며서 첩(帖)을 만들고 눈물을 흘리며 그 전말을 기록한다.

그리고 곡산(谷山)에서 북으로 80리쯤 되는 곳에 치마골[馳馬谷]과 태조성(太祖城) 등의 고적(古跡)이 있다.

향인(鄕人)의 전하는 말에는 ‘태조(太祖)가 이 치마골에서 말을 달리며 칼 쓰는 법을 연습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골짜기는 가람산의 꼭대기에 있으니, 거기에서 말을 달렸다는 것은 아마도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듯하다. 어떤 이는, ‘산의 형태가 치마[裙]와 같은데, 방언(方言)에 ‘군(裙)’을 ‘치마’라고 하므로 이렇게 이름 한 것이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골짜기에 ‘수라천(水刺泉)’이라는 우물이 하나 있으니, 그렇다면 성조(聖祖)의 어가(御駕)가 이 산에서 머무른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상께서 거기에도 비(碑)를 세우고자 하여 비를 이미 마련하였었다. 그러나 꼭 믿을 수 있는 일이 못 된다 하여 중지하고 말았다한다.

조선시대의 여인은 남편이 벼슬길에 나아가 품계가 오를 때 마다 함께 품계가 높아졌다. 부인 내조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조선여성의 지위에 대한 논란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현대 사회에서는 전업주부를 무임승차 정도로 평가한다. 이제는 전업주부에 대한 적당한 평가가 이루어 져야 한다. 전업주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존중하며,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화가 요구된다.

가정에서 아내이든 남편이든 누가 담당하든지 간에 가사 노동력의 가치가 존중 되어야 한다. 오늘날 측정되지 않는 결핍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가 가정에서 충실한 전업주부의 역할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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