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에 시집 펴낸 오금자 할머니
92세에 시집 펴낸 오금자 할머니
  • 조덕경 기자
  • 승인 2013.12.1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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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판매 수익금 어려운 이웃 위해 사용
 

[신아일보=조덕경 기자] 강원 춘천시 서면 삼악산 기슭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92세 할머니가 최근 시집을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강 상류 강촌역이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정착, 30년 동안 사는 오금자 할머니<사진>는 최근 첫 시집 ‘아흔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을 발간했다.

할머니는 시집 서문에서 “나이 92세가 되니 남들은 듣기 좋은 말로 백수를 누릴 수 있는 망백이라고 칭찬해주지만, 그보다는 매일 매일 무조건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없다”며 “왜냐하면 천국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할머니의 시는 주변의 흙, 산, 숲, 꽃, 새, 별, 달, 구름 등을 소재로 하지만 험난한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인생 경험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흔두 살의 할머니가 시집을 내자 문단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시인인 송명호 중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고를 읽고 나서 아흔두 살의 연세답지 않게 소녀 시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했다.

송 교수는 “국내에서 90살 되신 분은 시집을 내는 것은 처음”이라며 “할머니의 시는 시학적으로, 미학적으로 마술을 부린 게 아니라 그대로의 마음을 썼기 때문에 더 글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할머니의 시는 나이 들어 일자리가 없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인들에게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종황제의 근위대 대장이자 을사늑약 후 군대가 해체되자 문맹퇴치 운동을 벌였던 아버지 오유영 씨의 6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할머니는 결혼하고 나서도 부녀자를 대상으로 20년 동안 농촌 계몽운동을 벌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68년 전국 새농민상을 수상했다.

할머니는 1978년 화전민이 버리고 간 삼악산 기슭의 황무지를 개간, 사슴 농장을 운영했다. 돌과 뱀밖에 없던 땅을 개간한 할머니는 사육하던 곰과 사슴에 양손을 물렸음에도 요즘도 이 손을 이용해 일하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 깃든다’는 아버지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한겨울에도 냉수욕을 즐기는 할머니는 지난봄에는 92세에 3·1절 기념 마라톤대회에 참가, 완주 메달과 상금을 받았을 정도로 정정하다.

할머니는 시집을 판매해 생기는 수익금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