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서 깨어나야”
“성장,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서 깨어나야”
  • 고아라 기자
  • 승인 2013.11.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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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저자 리처드 하인버그

동식물은 어릴 때는 빨리 자라지만 성년기가 되면 성장을 멈춘다. 자연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 이치를 경제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 사람이 있어 주목 받고 있다.
저명한 환경·경제 전문가인 리처드 하인버그(63, 사진) 미국 탈탄소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하인버그는 올해 1월 국내 번역된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부키 펴냄)에서 “우리가 알던 경제 성장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지구촌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에 성장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계로 비유하자면 ‘식량’과 ‘산소‘가 부족해지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인버그는 지난 8일 ‘서울시 청년허브 콘퍼런스 2013’에 참여하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제로 성장이 불가피한 이유로 값싸고 풍부한 화석연료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대부분 부동산 거품 붕괴를 꼽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중심에는 유가 폭등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제일 먼저 부동산 거품이 터지기 시작한 곳은 교외 지역이죠. 이곳의 사람들은 출퇴근하려면 반드시 운전을 해야 하고 기름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은행 빚을 내서 집을 얻은 사람들인데, 석유 가격이 오르면서 기존의 부채를 갚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죠.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변제가 안 되니까 거품이 터진 겁니다.”
그는 화석연료의 고갈과 더불어 자원 채굴과 이용으로 인한 환경 파괴, 막대한 정부·민간 부채로 인한 금융시스템 과부하 등 세 요인이 어우러져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인버그는 “성장은 예외적이며 한순간의 섬광일 뿐”이라며 “현재의 경제 이론들은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예외적인 시기에 확립됐기에 성장이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장이 멈추는 시점은 나라마다 상황이 달라서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어느 순간 현재의 경제 팽창이 근본적 장벽에 가로막히는 시점이 찾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인버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 성장은 인류 전체의 역사를 따지고 보면 최근 몇십 년에 걸친 특수한 현상”이라며 성장의 종말은 경제가 원래의 정상 상태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훨씬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삶의 방식을 바꿔 대처할 힘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인버그는 “자신이 소비를 어느 정도 하는지 특히 에너지를 중심으로 살펴봐야 한다”면서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덜 쓸 수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 예를 들어 운전을 덜 하고 더 많이 걷고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 단위에서 살아가고 주변 이웃들과 소통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라며 “단계적으로 진행하면 되고 하기 쉬운 것부터 계획을 세워서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하인버그는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며 태양광 시설을 설치한 작은 집에서 살고 있다. 솔선수범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인생에서 행복감을 결정짓는 것은 사람들과 엮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인버그는 경제 성장이 종말을 맞는다고 해서 세상이 종말을 맞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의 종말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세상을 꿈꿔야 할 때라고 그는 힘줘 말했다.
‘블랙아웃’, ‘파워다운’ 등의 저서를 낸 그는 올해에는 영문판으로 ‘스네이크 오일’를 펴냈다. ‘미래에서 온 편지’, ‘파티는 끝났다’가 국내 번역돼 소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