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속보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 황미숙
  • 승인 2013.10.14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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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집현전 학사,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본관은 고령으로 자는 범옹(泛翁)이며 호는 보한재(保閑齋), 희현당(希賢堂)이다. 진사시의 초시ㆍ복시에 잇달아 장원하였고 생원시에서도 장원하였다. 세종 기미년 문과에 합격하였다. 정난 좌익 익대 좌리 사공신(靖難佐翼翊戴佐理四功臣)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에 봉해졌고 정축년에 정승이 되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을미년에 죽으니, 나이가 59세이다.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다. 범옹은 훈민정음의 창제와 보급에 공을 세웠다.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보한재집(保閑齋集)》 과 《북정록(北征錄)》, 《사성통고(四聲通攷)》 등이 있다
《필원잡기》에서 보면 범옹이 과거에 오르자, 고서를 널리 연구하고자 하였으나, 집에 서적이 없음을 한탄하였다. 그러다가 집현전에서 근무하게 되어 숙직할 때에 장서각에 들어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책을 가져다가 남김없이 모두 열람하였다. 어떤 때에는 동료 대신 숙직을 청하여 밤이 새도록 잠자지 않았다. 어느날 밤 이경(二更) 쯤에 내시를 시켜 숙직하는 선비가 무엇을 하는가를 가서 엿보게 하였는데, 신숙주(申叔舟)가 바야흐로 촛불을 켜놓고 글을 읽고 있었다.내시가 돌아와서 아뢰기를, “서너 번이나 가서 보아도 글 읽기를 오히려 끝내지 않다가 닭이 울자 비로소 취침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를 가상하게 여겨서 담비 갖옷을 벗어 그가 잠이 깊이 들 때를 기다려 그 위에 덮어주게 하였다. 숙주는 아침에 일어나서야 이 일을 알게 되었고, 선비들은 이 소문을 듣고 더욱 학문에 힘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범옹의 부인은 영상(領相) 윤자운(尹子雲)의 누이동생이었다. 범옹이 세종조에서 팔학사(八學士)에 참여하여 더욱이 성삼문(成三問)과 가장 친밀하였다. 병자의 난에 삼문 등의 옥사가 일어났는데 그날 밤 범옹이 집에 돌아오니 중문이 환히 열려 있고 윤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범옹이 방을 살펴보니 부인이 홀로 다락 위에 올라가서 두어 자 되는 베를 가지고 들보 밑에 앉아 있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당신이 평일에 성학사 등과 서로 형제와 다름없이 사이가 좋았습니다. 오늘 성학사 등의 옥사가 있었다 하니 당신도 반드시 그들과 함께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통지가 있기를 기다려서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당신이 살아서 돌아오셨습니다.” 하니 그가 무연히 부끄러워하며 몸둘 바를 몰랐다는 것이다.
범옹이 강원ㆍ함길 도체찰사로서 야인을 토벌하러 갈 때 하직하니 세조가 편전에서 인견하고 담장 밑에 심어져 있는 넝쿨박을 가리키면서 이르기를, “열매가 잘 맺을까.” 하니 공이 아뢰기를, “무성하지도 못한 채 철이 벌써 지났으니, 신의 생각에는 열매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우연히 열매 하나가 맺혀있는 것을 보고 쪼개어서 술잔을 만들고 어필로 시 한 장을 술잔 가운데에다 쓰기를, “경은 비록 내 말에 웃었으나(卿雖笑我), 바가지는 이내 이루어졌도다(我瓢旣成). 쪼개어서 잔을 만들어(剖以爲杯), 그지없는 정을 보이노라(以示至情)”하고, 대신을 시켜 술을 가지고 가서 위로하게 하고 이내 도공에게 명하여 그 표주박의 꼴을 본떠서 사기잔을 만들어 어제시를 새겨 항상 내전 곡연(曲宴)에서 쓰게 하였다고 한다.

신숙주는 설총의 이두문자는 물론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 등에 능통했으며 인도어, 아라비아어, 까지도 터득했다고 한다. 뛰어난 언어학자였으며, 일본 관련 책 『해동제국기』를 저술하는 등의 업적이 있는 신숙주는 의리를 저버린 변절자니, 기회주의라는 명칭이 그를 두고두고 괴롭혔다. 어쩌면 성상문과 신숙주는 친구이지만 가는 길이 다른 길이었다. 우리는 신숙주를 어떻게 평가하려는가. 충신과 역적의 ‘대의’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집권자의 편인가 아닌가로 구분하려는가. 죽음을 선택한 자만이 충신인가. 의리와 뜻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 자신만을 위한 명분인 것인가, 아니면 대의를 위한다며 포장된 명분인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지. 우리는 지금도 배를 갈아타는 자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 않는 듯하다. 쉬운 비판들의 말로서 ‘대의’에 대해 소인이 알 수 있다는 것인가? 특히 지식인이 ‘말하지 말아야 할 때에 말을 하는 것은 그 죄가 작지만, 말을 해야 할 때에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죄가 크다 (未可以言而言者 其罪小 可以言而不言者 其罪大).’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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