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속보
설씨가 약속을 지키다
설씨가 약속을 지키다
  • 황미숙
  • 승인 2013.08.2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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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신라, 설씨(薛氏)의 딸과 가실(嘉實)총각

《삼국사기》<열전>에서 전하는 설씨녀(薛氏女)는 신라 율리 민가의 여자다. 비록 외롭고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안색이 단정하고 지행이 순결하여 본 사람치고 부러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나 감히 범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가 늙은 나이로서 군에 편입되어 정곡이란 곳에 수자리 살러 가게 되자 그녀는 늙고 병든 그 아버지를 차마 멀리 이별할 수도 없고 또 여자의 신분이라 모시고 따라갈 수도 없어 그저 답답히 여기기만 하였다.
사량부(沙梁部)에 사는 소년 가실(嘉實)은 비록 가난한 집안이지만 교양이 있는 바 곧은 사나이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고 있으나 감히 말은 못하더니 설씨가 자기 어른이 종군하는 것을 근심한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 찾아가 설씨에게 청하기를 “내가 비록 용렬하지만 항상 의기있는 사람이라 자처해 왔다. 못난 이 몸으로 귀댁 아버님의 출역을 대신하고 싶다.”라고 하므로 설씨는 대단히 기뻐하며 들어가 아버지께 아뢰었다. 아버지는 들어오라고 하여 보고 말하기를 “듣건대 그대가 노인의 역사를 대행한다 하니 기쁘고 송구한 마음을 견딜 수 없는 동시에 보답할 것을 생각해야겠다. 만약 그대가 나의 어린 딸을 어리석고 고루하다고 하여 버리지 않을진대 아내로 삼아 주고 싶다.”고 하였다. 가실은 두 번 절하며 “감히 바랄 수 없으나 그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하고 곧바로 물러가 혼기(婚期)를 청하니 설씨는 “혼인은 사람의 대륜(大倫)이니 갑자기 할 수도 없소. 첩이 이미 마음으로 허락한 이상 죽어도 변함없으되 낭군이 수자리 나갔다가 교대하고 돌아온 뒤에 택일하여 성례하더라도 늦지 않소.”하고 거울을 반으로 나누어 각기 한 조각씩 가지며 “이것이 신표니 후일 마땅히 합칠 것이오.”하였다. 가실이 진작 말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에 당하여 설씨에게 이르기를 “이 말은 천하에 없는 양마(良馬)이니 뒤에 반드시 쓰게 될 것이오. 여기 두고 길러 뒤에 쓰게 해주시오.” 하고 작별하고 떠났다.
마침 나라에 사고가 생겨 사람을 교대하지 않으므로 6년 동안 눌러앉고 돌아오지 않으니 아버지는 딸더러 이르기를 “처음에 3년을 기약했는데 지금은 벌써 넘었다. 다른 성씨에게 시집가는 것이 좋겠다.” 하니 설씨는 “그때 부친을 편안케 하기 위해 굳이 가실과 더불어 언약하였기로 가실이 믿고 여러 해를 종군하여 기한(飢寒)과 노고를 견디며 하물며 적의 경계에 가까이 있어 손에 무기를 놓지 못하며 호구(虎口)에 접근하여 노상 씹힐까 걱정하고 있는 처지인데 신의를 버리고 식언을 한다면 어찌 인정이라 하오리까.” 하고 “끝내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지 못하겠으니 다시 말씀을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고 하였다.
늙은 그 아버지가 그 딸이 장성한 몸으로 남편이 없다 하여 강제로 출가시킬 양으로 몰래 마을 사람과 약혼하고 날짜까지 정하여 그 상대자를 데려오니 설씨는 굳이 항거하며 비밀히 도망가려 하다가 못 가고 마구간에 들러 가실의 남겨 둔 말을 보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때 가실이 교대하고 돌아왔는데 얼굴이 바짝 마르고 의복이 남루하여 집안사람이 몰라보고 딴 사람이라고 하였다. 가실이 바로 앞에 나와 파경을 던져 주니 설씨가 받아 들고 흐느끼며 아버지 및 집안사람이 매우 기뻐하여 드디어 다른 날에 서로 화합할 것을 언약하여 마침내 함께 해로(偕老)하게 되었다.

김부식은《삼국사기》<열전>에서 민간 여인의 효성, 의리, 정절 등을 기록하여 삼국의 일반백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남기고 있다. 특히 설씨녀의 이야기는 시기적으로 신라 진평왕(眞平王, 579~632)때 이다. 이 시기는 바로 전 왕이었던 진흥왕 때 차지한 한강유역에서 고구려·백제와의 전쟁이 많았던 상황이었다.
설씨녀와 가실의 신의를 기록한 김부식은 그들을 재회시키고 있다. 6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 만난 두 사람의 재회 장면은 언뜻 《춘향전》에서 춘향과 몽룡과의 만남에서 재현되고 있다. 허름한 차림에 지쳐 돌아온 낭군을 맞이하는 설씨녀와 춘향이 겹쳐진다. 오늘날 결혼 서약을 하며 만인 앞에서 철썩 같이 외치었으나 세월이 지나 헌신짝 버리듯 버려지는 믿음은 누구의 탓이라 하겠는가. 또한 유세기간 공약을 내세웠던 그들이 다음 선거에서 얼만큼 실천하고 책임지고 있는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선거를 하기 전에 평가표를 만들어 성적표를 만들자. 학생들에게만 줄을 세울 것이 아니라 정치하는 이들에게도 평가기준을 만들어 평가하고 성적표를 만들어 공개한다면 공약을 수행하려는 노력과 책임의식을 가지지 않을까하는 공허한 기대감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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